[세트] 지금 우리 학교는 1~5 세트 - 전5권
주동근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귀신이 나오는 공포물은 딱 질색이다. 물리적인 실체와 한계가 없어서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땅에서 솟아나온다든가 이불 속에서 확 튀어나온다든가. 귀신이 나오는 공포물을 보고 나면 사흘은 잠을 제대로 못 잔다. 그에 비하면 분명히 만져지고 죽일 수도 있는 살인마나 좀비가 등장하는 공포물은 한결 낫다. 사실 좀 좋아하기까지 한다. 주동근의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을 읽게 된 계기도 바로 좀비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지우학』에 등장하는 좀비는 다른 좀비에게 물려서 감염되고, 외모가 흉측해지고, 인간일 때보다 훨씬 힘이 세지며 고통도 느끼지 못하지만 지능은 낮아진다. 외국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좀비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지우학』이 독특한 점은 배경이 학교라는 것이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친구였던 존재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 상상이나 해 본 적 있는가.

 

『지우학』의 장르를 '학원 좀비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특수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학교에 침입한 좀비를 때려잡는 오락성 강한 만화로 보일 가능성이 짙다. 『지우학』은 전혀 다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친구와 선생님들'이 좀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존재들이 말이다. 그들이 좀비로 변하는 순간, 학생들은 단단하다고 믿었던 학교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약했는지를 깨닫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전사가 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우학』의 비극이 시작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초현실적인 현실 앞에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며 '어른들 말만 잘 들으면 된다'던 학교는 갑자기 전쟁터에 던져진 학생들을 구해주지 못한다. 그들은 친구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친구를 짓밟고 올라서지만, 결국은 내팽개쳐지듯 사회로 나가야 하는 대한민국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지우학』의 공포가 섬뜩하면서도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지난 봄 전국을 비참함에 빠뜨린 세월호 사건이 자꾸 떠오르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이성을 잃어버린 채 피를 찾아 헤매는 좀비보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아이러니는 『지우학』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이다. 스스로를 지키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어서 일행을 점점 위험에 빠뜨리는 나연이, 스스로를 영웅이라 생각하며 잔인한 변종 좀비가 되어가는 귀남, 다수를 위한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기에 급급한 정부가 보여주는 저열한 이기심이야말로  『지우학』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요소이다. 

 

『지우학』의 흡인력은 대단하다. 일단 책을 펼치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숨가쁜 전개에 헉헉대며 끝까지 내달릴 수밖에 없다. 마치 애니메이션을 책으로 옮긴 듯한 생생한 묘사가 주는 현실감 때문에 더더욱 빨려든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내뱉은 긴 호흡 속에 눈물이 섞여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프고 슬프기도 하다.  『지우학』을 단순한 학원 좀비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포를 압도하는 슬픔과 안타까움은 아마도 꽃다운 나이에 처절하게 시들어가는 아이들에게 손내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일지도 모른다. 

 


『지우학』이 여름 더위를 날려줄 통쾌한 좀비 액션이 아니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현실과 닮아서 더욱 섬뜩한 공포가 잠 못 드는 긴긴 밤의 허리를 베어내 줄 테니까.  '지금 우리 학교는' 이토록 무섭고 차갑지만 앞으로의 우리 학교는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이 되어 아이들을 감싸안아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 작품은 '19세 미만 구독불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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