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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가의 집 1
김상엽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2월
평점 :

6년 전, 국보 1호 숭례문이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가던 무시무시한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TV 화면으로 보이는 불타는 숭례문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그래서 거짓말처럼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복원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여기저기 다시 망가져 가는 숭례문이 신문과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했다. 수백년 동안 서울을 지키던 숭례문을 한낱 부실건축물로 만들어버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국가의 보물을 지키지 못했으면 적어도 제대로 되살리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복원가의 집』을 읽는 내내 숭례문이 떠올랐다.

복원가에게는 기술을 가진 손과, 지식을 가진 머리와 유물을 사랑하는 가슴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
복원가였던 할아버지가 물려준 큰 집에서 혼자 사는 고등학생 유성우는 손상된 물건의 궤적을 투사해서 본래 모습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비록 현실은 언제나 생계 문제로 고민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느 날, 그의 집에 백제 21대왕의 2대손인 중평군과 그 가솔들의 영혼이 무단침입하여 눌러앉는다. 여러 가지 사정이 겹치면서 성우는 어쩔 수 없이 이 달갑지 않은 손님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복원가의 집』은 기발한 상상력과 단단한 응집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미스터리, 판타지, 오컬트, 액션, 휴먼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많은 독자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고, 그림체 또한 깔끔하고 대중적이다. '궤적 투사'라는 능력과 탁월한 기술에 인간미까지 지닌 주인공 성우는 물론이고, 개구쟁이 꼬마지만 비범한 카리스마를 지닌 중평군과 그의 호위인 미소녀 란, 성우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친구 시호, 세상에서 기계를 가장 사랑하는 정연까지 등장인물이 골고루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수공예품에 붙어있는 '혼'의 존재는 귀여움 그 자체이다. 처음 봤을 때 모 비만클리닉 CF의 지방이가 떠올랐다. 특히 이 혼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면 성우가 그 물건을 꼭 복원해주기를 기도하게 된다.

정돈된 그림체와 흥미로운 소재, 탄탄한 스토리로 만화적 완성도도 높지만 『복원가의 집』은 무엇보다 '복원가의 자세'를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앞서 언급했던 숭례문 복원의 사례에서 보았듯 허술한 복원은 어설픈 창작보다도 부적절하다. 누군가의 피와 땀과 애정이 녹아들어간 물건의 제 모습을 찾아주는 일은 바른 마음과 깊은 정성이 없이는 힘든 일이다. 누나가 만들어 준 엉성한 천 지갑을 소중하게 품고 다니는 남자를 위해 지갑을 복원하면서 비뚤비뚤한 바느질까지 재현해낸 성우가 '복원은 창작이 아니니까'라는 말을 할 때, '복원'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아끼는 물건이 망가졌을 때 느끼는 마음의 공허함은 물질적인 가치로 평가할 수 없다. 아무리 '최신'과 '신상'이 대세인 세상이라지만 추억이 담긴 물건은 쉽게 새 것으로 교체할 수 없다. 실용성이 사라져도 평생 간직하고 싶은 물건이 있는 것이다. 친구나 애인만큼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이 부서졌을 때,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할까. 그래서 복원가에게는 '물건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물건에 담긴 마음까지 복원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복원가로서 성우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