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한 나라, 중국
한한 지음, 최재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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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과 지방선거로 뒤숭숭했던 6월 초, 지인의 권유로 읽게 된 한한의 『나의 이상한 나라, 중국』은 작가의 특이한 이력이 눈길을 끄는 책이었다.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 밀리언셀러 작가이자 초대형 블로거, 중국 최고의 프로 카레이서, 2010년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 아이돌 스타 같은 외모의 소유자... 그야말로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검열과 억압이 심한 중국에서 사회 비평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점도. 

 

한한은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살고 있지만 이 책(원서)은 대만에서 출간되었다. 한한이 블로그에 올렸던 글 중 중국 정부에 의해 삭제된 것들을 모아 실었다는 편집부의 소개글을 보고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사회 비평으로만 500페이지를 채운 책을 과연 읽을 수 있을까, 너무 과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또한 2010년에 출간된 잡문집이 왜 이제서야 한국에서 선을 보였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한한의 글은 20대답게 발랄하고, 20대답지 않게 꽉 차 있다. 커다란 사건사고, 고질적인 병폐, 사라지지 않는 부패와 삭막해지기만 하는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특유의 풍자로 유쾌하고 통쾌하게 풀어낸다. 평론가도 아니고 글을 잘 쓰는 편도 아닌 내가 평가하긴 그렇지만 내내 '이 사람 정말 글 잘 쓰는구나'라는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하지만 가볍지 않다. 언어유희와 비유에 능해 술술 잘 읽히는 글을 쓴다. 그의 비아냥과 조롱은 적절하고 심지어 예의바르다. 성(性)적인 비유와 과격하고 단정적인 문체(번역 중에 순화된 부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천박하지는 않다. 이토록 영리한 글쟁이는 만나본 적이 없다.  

고대의 자료와 빙하시대의 사진을 들이대고서는 네놈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만 해도 국가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사치스럽게 뭘 더 바라는 것이냐 하고 말하지 못해 안달이다.

자기 궁둥이를 깨끗이 닦지 못했다고 해서 다음 세대의 배냇머리를 휴지로 삼아서는 안 된다.

참신하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만한 비유란 이런 걸 말하는 것이리라. 

 

근대에 들어와 우리와는 너무 다른 길을 걸었던 중국의 수년 전 이야기가 지금 우리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까 하는, 앞서 말한 의구심도 한순간에 날아갔다. 몇 개의 글만 제외하면 놀랄 만큼 공감가는 대목이 많았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이것은 아시아의 문제인가, 아니면 모든 인류의 문제인가를 고민할 정도로 한한이 지적하는 부조리들은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존재하고 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청춘』이다. 아프기 때문에 청춘이 아니라 봄날은 없고 춥기만 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기계적인 노동, 희망없는 미래, 형편없는 보수'가 청춘의 키워드가 되어버린 것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이다. 결혼에 사랑보다 조건이 우선하는 것도, 자기중심적이고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렇다. 조작되고 통제되는 언론,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청소년에게 해악을 끼치는 기성세대, 권력이 돈을 버는 현상, 약자에게만 향하는 폭력, '100만 개의 이상을 말살하고는, 한두 명의 백만장자를 키워낸 후 그들을 성공 신화의 모범으로 삼아 또하나의 이상으로 존재하게' 하는 현상, 예술인들이 살기 힘든 환경 또한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이쯤이면 이 책이 '나의 이상한 나라, 한국'이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지만  『나의 이상한 나라, 중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쌓인 울분을 충분히 대변한다.

 

슬픈 것은,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은 위로가 되지만, 내 나라와 비슷한 처지의 나라가 옆에 있는 것은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게 있어 중국은 가보고 싶은 나라 목록에 들어가지조차 않는 나라지만 한한 같은 사람을 가진 점은 부럽다. 그가 '글'로써 이만큼의 영향력을 얻었다는 것이 부럽다. 이 책은 '글의 힘'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다시 깨닫게 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자신이 하는 것은 그저 '노는 것'이라 말하는, 미칠 듯한 자신감과 의외의 겸손함이 공존하는 이 신기한 사람의 행보가 참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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