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트 홀릭 - 하늘길에서 세상을 배우다 스튜어디스 1만 시간 비행의 기록
한소연 지음 / 니들북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에 대한 동경은 나를 설레게 하기도 하고 괴롭게 하기도 하는 짝사랑 상대와도 같다. 하지만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용기가 없어서 그 마음을 서점에서 여행 에세이를 들춰보는 것으로 달래곤 한다. 그러던 중 조금 특이한 책을 발견했다. 하얀 바탕에 비행기 창문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고, 그곳을 통해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의 그림자가 보이는 표지를 가진 책이었다. 제목마저 마음이 울렁울렁해지는 『플라이트 홀릭』. 두근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책을 자세해 보니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스튜어디스가 쓴 비행 이야기였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저 여행이라면 나도 충분히 갈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있더라도 스튜어디스의 삶은 여행객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게다가 나는 절대 스튜어디스가 될 수 없다. 미지의 세계를 책을 통해 만나는 것이야말로 책을 읽는 즐거움이지 않은가. 땅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하늘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삶이 여행이나 마찬가지일 것만 같은 그들의 비행에 대한 속마음이 궁금했다. 


 

이 책의 필자는 대한항공 소속 승무원으로 책을 낼 당시 11년째 근무 중이었다. 책 속에서 만난 필자는 밝고 상냥하고 보통 여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스튜어디스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을 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으로 추억을 잡아두는 것이 취미이고, 시차에 적응해야 하는 스튜어디스로서 어디서나 잘 잔다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제는 감흥도 없고 언제나 똑같아 보이는 그 곳이 땅인지 하늘인지,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을 알고 있는지, 나는 잊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언제나 설렐 것 같았는데 직업이 되면 역시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그래도 필자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강한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음이 책 전체를 통해서 전해져 왔다. 이 책을 읽으며 스튜어디스라는 낯선 직업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공항에 몇 시에 떨어져?'와 같은 표현을 스튜어디스는 쓰지 않는다는 것, 승무원의 세월은 '마하'로 흘러간다는 것, 언제나 떠나고 싶어하는 우리와 달리 한국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참고 비행에 나선다는 것, 그리고 대한항공 승무원 유니폼의 상징과도 같은 빳빳한 스카프 매는 법도 말이다. 

 

 

책 속의 사진은 필자가 직접 찍은 것이다. 세계의 관광명소와 필자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승객이 볼 수 없는 그들만의 공간을 담은 사진들이다. 언제나 비행기를 타면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흘끔거리기만 했던 곳들을 당당히 볼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여행 에세이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스튜어디스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프로 작가가 아니다 보니 문체가 마치 개인 블로그처럼 가볍다는 점도 처음에는 조금 거슬렸지만 읽다 보니 오히려 진솔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플라이트 홀릭』은 하늘에서 쓴 스튜어디스의 소소한 일기이다. 하루의 기록이기도 하고 일의 기록이기도 하다. 온몸을 불태울 정도의 열정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조금 더 잘해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필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행 가고 싶은 열망을 달래려고 펼쳤던 책에서 '프로페셔널'의 자세를 배웠다. 지금은 별볼일 없는 잉여지만 오늘부터라도 주어진 하루를 꾹꾹 채워 살기, 남은 한 해의 목표를 이렇게 수정해볼까 한다. 나만의 'OOO 홀릭'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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