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식당 11 심야식당 2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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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만화책을 보다 보면 '아, 이런 곳이 우리 동네에 있으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장소가 있다. 내게 그런 장소 1위는 『서양골동양과자점』의 '앤티크'였다. 하지만 바로 이 만화가 나오면서 순식간에 순위가 바뀌었다. 밤 12시가 되면 문을 여는 기묘한 요리집 『심야식당』은 내 마음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1위로 뛰어올랐다. 야식을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 늦다 못해 이른 새벽까지 깨어있을 때, 출출함과 함께 부풀어오른 감성을 풀 수 있는 장소를 꿈꾸곤 한다. 그럴 때 작고 아늑한 심야식당이 근처에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혼자서도, 여럿이서도 편하게 밥 한 끼 먹으며 배는 물론 마음까지 채울 수 있는 곳 말이다. 

 

 

심야식당의 또다른 매력은 나오는 음식들이 그다지 거창하지 않아서 집에서도 쉽게 따라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심야식당에 나온 음식들의 레시피를 모아놓은 책도 있다. 11권에도 양상추 볶음밥, 두부 김치찌개, 콘버터 등 크게 공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지만 무척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음식들이 맛있어 보이는 것은 그 음식을 주문한 사람들의 '사연'의 힘 때문일 것이다. 억지로 감동을 주거나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소소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사연들은 심야식당의 소박한 음식들과 꼭 닮아 있다. 

 


심야식당의 온기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난로는 역시 '사람'이다. 그 중심에는 전혀 부드럽지 않은 인상을 가진 마스터가 있다. 오히려 심야에 영업하는 식당에는 딱 어울리는 외모일까. 하지만 심야식당의 마스터는 요리 솜씨도 좋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심야식당에서는 호스트나 콜걸 같은, 주류가 될 수 없는 직업군의 사람들도 평등하게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손님이라면 누구도 무시당하지 않는 공간, 심야식당이 편안하고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반면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독특한 사연도 많다. 암투병 중인 여자에게 남자가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사랑을 이룬 띠동갑 연상연하 커플 이야기, 닭다리 구이를 먹는 모습을 보고 오빠를 알아본 여동생이 엄마와 오빠를 화해시키는 이야기, 마치 주종관계처럼 보이지만 서로가 없으면 살맛이 나지 않는 오래된 친구의 이야기 등이 나온다. 그와 더불어 불륜, 가정불화, 폭력 등 무거운 이야기도 많지만 심야식당 안에서는 이런 것들도 마치 일상적인 수다처럼 느껴진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여러 가지이고, 어떤 것이 딱히 좋거나 나쁘거나 심각하거나 하찮다고 재단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해가 쨍쨍한 낮보다 좀 많이 솔직해도 용서될 것 같은 깊은 밤에 추억이 가득한 음식 앞에서 무장해제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심야식당』에는 우리가 가면을 벗어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밤 12시, 밤하늘과 달과 별만이 함께 하는 시간에 문을 열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는 심야식당은 위로의 공간이다. 가장 외로운 시간을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채워주는 곳이니까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각이 밤 11시 반. 집 근처에 심야식당이 있다면 첫 손님으로 달려가고 싶은 밤이다. 그리고 마스터에게 가다랑어포를 가득 얹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문어빵을 주문하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오늘 밤 문어빵에 얽힌 추억 한 조각도 그곳에 두고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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