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십팔사략 10 (올컬러 완전판) - 북송시대(北宋時代) 남송시대(南宋時代)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후량의 황제가 된 주전충은 이극용을 죽이는 데 혈안이 되었고, 그 아들들은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려고 분주하다. 이극용은 아들 이존욱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죽는다. 이존욱은 주전충 사망 후 왕위 다툼으로 휘청이는 후량을 정복하고 당(후당)을 세운다. 하지만 그는 정치에 무지하였고, 대신 국정을 맡은 공겸은 온갖 세를 거둬들여 백성들의 반감을 산다. 결국 이존욱은 친위대에게 죽임을 당한다. 

왕위 다툼 속에서 명종의 사위 석경당은 왕위를 차지한 후 나라 이름을 진(후진)이라 하고, 자신을 도운 걸안에 땅을 내어준다. 그러나 걸안은 나라 이름을 요로 바꾼 후 계속해서 석경당에게 공물을 요구하였다. 시달림에 지친 석경당이 죽고 조카 석중귀가 왕이 되자 요는 예를 차리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 삼아 후진을 공격한다. 이에 석경당의 부하 유지원은 한(후한)을 세우고 요군을 공격해 몰아낸다. 

유지원이 죽은 후 충신이었던 곽위가 왕이 되어 주(후주)를 세우지만 그를 못마땅해 하던 유지원의 동생 유숭은 요에 지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후주군은 유숭을 몰아내고, 이때 공을 세운 장군 조광윤이 황제가 되어 나라 이름을 '송'이라 한다. 

송 태조는 중앙집권제로 병권을 장악하고 대륙을 통일한다. 3대 왕이 집권하던 시절, 요가 송을 넘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찰 나온 원수가 송에 당하자 강화를 요청하고, 나약한 황제는 대신들에 떠밀려 강화를 체결한다. 점점 썩어가는 송나라에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걸출한 판관 포청천이 있었다. TV 시리즈로 인기를 끌었던 <판관 포청천>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을 것이다. 

송 신종은 개혁의지를 품고 왕안석을 부재상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왕안석은 귀족들의 반대와 황제의 급사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죽는다. 그때 반대한 사람들 중에 <자치통감>을 쓴 대학자 사마광이 있다. 

그리고 이 시대에도 뛰어난 예술가가 등장하는데 '동파육'이라는 음식 이름의 유래가 된 소동파이다. 그는 왕안석을 개혁법을 반대하다가 지방으로 밀려난 후 풍자시를 쓰고 필화 사건에 연루된다. 다행히 사형을 면한 그는 황주의 시골 구석에서 수많은 명작을 남긴다. 

요에 핍박당하던 여진족 추장 아골타는 궐기하여 금나라를 세워 황제가 된다. 금의 세력이 커지자 송은 동맹을 맺고 요를 공격하려 했으나, 내분이 심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많은 땅만을 빼앗겼다. 이때 뺏긴 연운 16주를 되찾기 위해 송은 다시 요와 손을 잡았으나 송의 배신을 안 요가 송을 멸망시킨다. 이렇게 북송의 시대가 끝난다. 

이후 송의 황족 조구는 수도를 항주로 옮기고 남송을 세운다. 하지만 그의 안일함에 지친 북송 백성들은 빼앗긴 땅을 찾기 위해 자진하여 싸운다. 이때 의용권에 가담하여 장교가 된 악비는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연전연승한다. 그는 악가군을 이끌며 금을 압박하고, 금은 남송 황제에게 악비를 처단하라고 요구한다. 결국 친금파 재상 진회 때문에 누명을 쓰고 죽은 악비는 사후에 복권된다. 


악비 사후 송은 금과 불평등 조약을 맺는다. 한편 몽골의 테무진은 세력을 키워 자신들을 학대하는 금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린다. 그가 바로 칭기즈칸이다. 몽골을 우습게 보던 금은 결국 멸망하고, 이에 기뻐하던 남송도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이렇게 남송의 역사도 끝나면서 <십팔사략>의 긴 여정도 끝이 난다. 물론 중국의 역사는 송나라 이후에도 계속되고, 치열한 전쟁과 권력 다툼, 그리고 걸출한 예술가들의 탄생도 계속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십팔사략>에 소개된 역사도, 소개되지 않은 역사도 아니다. 어제를 돌아봄으로써 우리가 오늘날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고쳐나가고 무엇을 이어나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진짜 중요한 것이다. 역사란 과거의 기록인 동시에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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