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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抱天) 5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애꾸눈 점쟁이가 눈물점 있는 어린 딸을 데리고 스승을 찾아 조선 땅을 헤맨다.
스승을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던 그는 한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하던 동료가 나쁜 마음을 먹고 나라를 뒤집으려 하는 것을 막기로 결심한다.
<포천>의 기둥 줄거리는 이렇다.
시간과 공간을 널뛰듯이 넘나드는 이 만화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이 기둥 줄거리를 아는 것은 꽤 중요하다.
국사 공부를 열심히 했든 안 했든, 역사에 관심이 있든 없든, 그런 것을 다 떠나서 <포천>은 신기할 정도로 재미있다.
듣도 보도 못한 옛날 말들 덕분에 한 페이지에 하나 이상은 꼭 주석이 붙어 있고,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도 가지 않아 자칫하면 미로에서 길 잃듯 책 속에서 갈피를 잃고 헤매기 십상인데도 말이다.
[본문과 관계없는 이야기 #1]
집사람이 없으면 밥도 못 해 드시는 화담 선생님. 21세기에 태어나셨으면 구박 엄청 받으셨을 듯. ㅋㅋㅋㅋ
점쟁이와 도인들이 잔뜩 등장하는 만큼 이미 지나간 일들을 앞으로 다가올 일들처럼 능청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은 작가의 배짱일 것이다.
작가가 사는 시대는 2012년임을 알면서도 그 예언들이 실현되는 장면에서 깜짝깜짝 놀라니 말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부터 시작해서 온갖 고전 속 이야기들을 베틀로 정갈하게 짜낸 이 이야기는 작가의 내공을 느끼게 한다. 만화 속 어디에서도 작가의 힘겨움이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원래 있던 이야기를 그대로 베끼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본문과 관계없는 이야기 #2]
깨알같은 말장난은 이 책을 읽는 큰 재미 중 하나.
남자는 산진두령, 여자의 이름은 설레이다.
여자의 이름을 몰랐던 산진두령이 마음에 봄바람 든 것을 표현하려 한 말이 야한 농담이 되어버린 순간이다.
국사 교과서에서 제목은 한번쯤 다 보았지만 읽어본 적은 없는 사람이 더 많을 책들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 만화의 미덕이다.
이 작품 속에 나온 고전들만 찾아 읽어도 마음의 깊이가 한뼘쯤은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어 욕심이 난다.
[본문과 관계없는 이야기 #3]
작가의 센스에 감탄 또 감탄
한자의 뜻과 모양을 활용하여 웃는 소리와 상대방에 대한 비아냥을 동시에 담아낸 한 컷.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포천>은 역사 만화가 아니다. 국사 공부 어려우니 만화로 쉽게 하세요~하고 권해주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지고 공부하기에는 그리 친절한 구성도 아니고.
하지만 씹을수록 은은한 단물이 배어나오는 이 작품,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시원한 수정과 한 사발 옆에 놓고 읽으면 장마철의 눅눅함 따위는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