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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수사대 박스 세트 - 전4권 - 진정한 협객의 귀환!
이충호 글 그림 / 애니북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툭 까놓고 이야기하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작품이다.
일단 분량. 생각보다 큰 스케일을 작은 그릇에 담다 보니 다 넘쳐버린 느낌이다.
두 번째로 '무림수사대'의 활약. 전체 스토리의 절반이 지나도록 실력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던 무림 2팀은 단 한 번 하얗게 불태우고(?) 존재감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백운과 지후의 파트너십. 물론 기둥 줄거리는 현과 지후의 이야기이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읽는 내내 둘의 관계가 싱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연쇄살인 현장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 다소 진부하지만 임팩트는 있었다.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지만 그 아쉬움과는 별개로 마음을 움직이는 깊은 울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난 4권 읽으면서 눈물까지 났으니까.
작가가 "어지러운 이 세상을 바꿀 진정한 '협객'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그렸다는 이 만화는 공교롭게도 그 질문처럼 악을 처단하는 영웅들이 등장하는 무협액션활극이 아니다. 사회 풍자와 정의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옳은 것의 승리'와 연결되지는 않는다.
"사실... 지금 내가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은.... 그 날의 나...일지도."
사실 이 만화의 주인공들의 세상의 정의에는 관심이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기 위해 살고,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똑바로 걷기 위해 전진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원망할 뿐이다.
백운과 지후의 첫만남은 그리 상큼하지 못했다.
백운은 정말 멋지게 그려낼 수 있는 캐릭터인데 작품 속에서 왠지 자기 가치만큼의 비중을 부여받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자, 그럼 현과 지후의 이야기를 한 번 볼까.
이 작품은 이 두 남자의 이야기에 신경을 집중할 때 가장 몰입도가 높은 것 같다. 그 이유는 지후가 너무나 현에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현 외의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이 옅어진다.
"벽 뒤에 숨어만 있어서는... 계속 그림자밖에 볼 수 없다.
조금만 의지를 가지고 움직여 봐라. 그러면 '빛'을 볼 수 있을 거다."
현은 과거의 지후에게 있어 나란히 하고 싶은 빛이었고, 지후는 지금의 현이 유일하게 바라볼 수 있는 빛이다. 둘은 그런 관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를 가까이 할 수 없다.
전형적인 적색과 청색의 대비. 이는 어쩌면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결말이 해피엔딩인지 언해피엔딩인지는 보고 나서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자신이 어떤 모습이어도, 어떤 짓을 해도 끝까지 믿고 손 내밀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세상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래서 현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계... 멈춰버린 거냐...! 망가진 시계는 버려야지... 언제까지 그 시간에 멈춰 서 있을래...
이제 그만... 너만의 길을 가야지. 고집쟁이야..."
"걱정 마. 선배. 난 지금 나의 길을 가고 있으니까. 경찰로서... 아주 악질적인 범죄자 새끼를 잡으러 왔거든."
현실 속에는 후뢰시킹(!!)을 불러내 악의 무리를 처단할 후뢰시맨도 없고, 회전문 안에서 쫄쫄이 갈아입고 나타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줄 슈퍼맨도 없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외계에서 온 초능력 영웅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평범한 영웅이. 나일 수도, 혹은 내 옆의 친구일 수도 있는 흔하디 흔한 영웅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