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십이국기 2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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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운명을 동경한다. 특히 미래가 보이지 않고 원하지 않는 길을 가기 위해서도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세상을 살다 보면 어느때보다 운명이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길이 있어서 나는 그저 앞에 보이는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 적이 한번씩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판타지 장르를 읽는 이유 중 한 가지이다. 판타지 장르의 주인공들은 평범하게 살고 있었지만 사실은 중요한 인물이 될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말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족의 냉대를 받으며 살던 소년 다이키는 어느날 벌을 서다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하얀 손을 발견한다. 별 망설임도 없이 그 손을 잡아버린 다이키는 이세계로 끌려들어가고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여괴 산시를 만나게 된다. 그곳은 기린이 태어나면 그가 왕을 선택할 때까지 돌보는 봉산이라는 곳이며, 다이키는 10년 전 식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던 날 잃어버린 태과에서 태어난 기린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지만 친절한 여선들과 산시의 돌봄을 받으며 봉산 생활에 적응해가는 다이키. 그러나 10년 동안 다른 세계에 있던 다이키는 기린으로서 당연한 것들을 해내지 못하는 자신이 걱정스럽다. 

『십이국기』 1권이 기린이 다른 세계에 있는 왕을 데려오는 이야기라면, 2권은 반대로 다른 세계에 살던 기린이 각성하여 왕을 선택하는 이야기이다. 왕을 선택하고 섬기는 것은 기린의 운명, 기린을 돌보는 것은 여괴와 여선의 운명, 왕이 되는 것은 기린의 선택을 받은 자의 운명이다. 『십이국기』는 이처럼 운명으로 가득한 이야기이다. 태어나는 순간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매력적이지 않다.  우리는 인생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운명에 저항하는 것이 멋진 것이라고 배워왔으니까. 그러나 잘하는 것도 원하는 모습도 없는 사람에게 인생을 선택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너는 이런 필요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해준다면 그 길을 열심히 따라갔을 텐데. 

다이키가 봉산에서 쉬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다. 운명이 결정된 자의 여유보다는 운명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자의 불안이 더 강하게 그를 휘어감는다. 하지만 나는 다이키의 불안조차도 부러웠다. 다이키가 기린으로서 완전해지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보잘것없는 나도 사실은 어딘가에서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상상은 자유니까. 하지만 운명보다는 내일의 밥벌이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저 한순간, 소설 속의 모험을 즐겨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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