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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평점 :
이 넓고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부에는 놀랍고도 위대한 잠재력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정적인 기회가 오지 않는 한 그 숨겨진 재능이 발휘되는 일은 거의 없다.
- 서문에서 발췌
젊음과 늙음의 경계는 몇 살일까? 5년 전만 해도 '나 늙었나 봐'라는 말은 백 퍼센트 농담이었다. 내가 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체력도 기억력도 5년 전보다 눈에 띄게 저하되었지만 '늙었다'고 말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억울하다. TV를 켜면 내 또래 연예인들이 '적지 않은 나이' '중년'으로 불린다. 그런데 아직 젊다고 굳이 주장하는 것도 왠지 자존심 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늙었다는 증거인가 싶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인데 왜 늙는다는 것은 약점이 되고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알래스카 극지방 유목민이 있다. 혹독한 겨울은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부족에게는 돌봐야 할 두 늙은 여자도 있다. '칙디야크(Ch'idigyaak)'와 '사(Sa')'라는 이름의 두 여인은 늙었다는 것을 무기로 온갖 불평을 해대며 부족을 힘들게 한다. 그 때문에 부족에게(심지어 가족에게도) 버림받는다. 젊은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여생을 보낼 것이라 여기던 여든의 칙디야크와 일흔 다섯의 사는 날벼락 같은 상황이 닥치자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뭐라도 해보기로 한다.
부족의 보호가 계속 이루어졌다면 불평과 어리광으로 말년을 장식했을 칙디야크와 사는 버림받음으로써 '위대한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는다. 둘은 옛 기억을 되살려 사냥을 하고, 식량을 저장하고, 야영을 하며 정착할 곳을 찾아 나아간다. 작가 벨마 월리스는 칙디야크와 사가 생존을 위해 도전하고 조금씩 성취를 이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두 늙은 여자』의 건조한 문체는 단조로운 느낌을 주지만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장점도 있다. 200쪽도 되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분량은 독자에게 지루함을 안겨주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노인은 유목민뿐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든 부담으로 다가온다. 고령화 사회를 두려워하는 전세계적인 분위기가 그것을 말해준다. 젊음은 장점이고 늙음은 단점이라는 것이 옳은 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칙디야크와 사가 거친 자연을 헤치고 끝내 윤택한 생존에 성공하는 데 많은 나이는 그다지 약점이 되지 않는다. 긴 시간 쌓아온 지식과 경험은 오히려 더 훌륭한 생존수단이 된다.
죽음이 가까워오는 나이는 무기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차피 곧 죽을 거 뭐라도 해보자는 각오를 하게 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야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도전은 젊은이의 전유물도 아니다. 스스로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살리는 두 늙은 여자의 생존기는 짧은 청춘에 집착하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이야기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늙을 것이고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