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심리학 실험실 - 집에서도 할 수 있는 50가지 초간단 심리실험
마이클 A. 브릿 지음, 류초롱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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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브리는 진실파가 눈으로 본 시점을 그리고 거짓파는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 그림을 그리는 경향 또한 발견했다.

341 페이지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디테일이 있다. 보다 섬세하다. 왜냐면 자기 눈으로 본 선명한 사진같은 것을 읽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반면 거짓은 끊임없이 생각해야한다. 한가지가 어긋나면 그것을 맞추기위해 또 거짓말을 해야한다. 얼렁뚱땅 둘러대기... 거짓말하는 자의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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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한의 화가 천경자 - 희곡으로 만나는 슬픈 전설의 91페이지
정중헌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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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래도 여행은 제 삶의 동력이자 제 그림의 원천이 되었어요. 남태평양, 사모아, 타히티를 비롯하여 7개국의 스케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때는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어요.

146 페이지

프라도 미술관에 갔을 때의 감회를 천경자는 이렇게 서술한다.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도 어느 한 작가도 못 따라갈 형편이니 서글프다고 말이다. 물론 프라도 미술관에 걸린 작가들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반열에 오른 작가가 되지 않았나... 꿈은 그녀를 그리게 했다. 그녀의 화려한 그림들 역시 모든 꿈의 스케치, 여행의 스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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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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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능력을 타고 태어났다면 어른이 되어가면서, 성숙한 자아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 능력도 점점 커지고 성숙해져야 되는 것이죠. 씨앗으로서의 영재가 씨앗의 상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꽃피는 것이 영재성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입니다.

600 페이지

어떤 특별한 능력을 이미 지니고 태어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 영재성이 세상과 만나면서 여러가지 모순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영재가 아니다. 영재성은 꽃 피는 것이지, 그 자리에 머물러서 얼어붙는 것이 아니다. 영재를 제대로 꽃 피우게 하는 사회... 지금까지는 구경하고 놀라워하는 데 그쳤다. 영재성을 꽃 피우게 하는 대신 도구화하고 훈련시켰다. 영재란 씨앗이다. 아직 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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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사회 - 공정이라는 허구를 깨는 9가지 질문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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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사회

공정이라는 허구를 깨는 9가지 질문

이진우 | 휴머니스트

저자의 책이 내게 왜 끌렸을까? 바로 저 한 문장이었다. 공정을 간절히 외치는 사회가 바로 불공정 사회라는 말...

얼마전 한 지인과 이야기하다가 이런 말이 나왔다. 사람들이 과연 공정해지면, 모두가 평등해지면 살기 좋다고 생각할까? 오히려 더 큰 불만이 초래될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 그럴까? 정의와 평등이 과연 인간 사회에서 걸맞게 실현될 수 있을까? 불공정사회를 그대로 인정하고 격차를 줄이는 데 노력하는 것이 최선일까?

비정상을 정상으로 말하고, 그른 것을 옳은 것이라고 포장함으로서 사람은 이미 도덕적 도착증에 걸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모든 것은 바로 권력을 얻고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내 세대가 아니면 그 다음 세대에 이익을 위해서 우리는 그만큼 분투하고 거짓됨을 참이라고 말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고 사고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이미 계급사회다. 어찌보면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인간성이 결여된 제도라고 하지만 그에 못지 않는 현대의 카스트는 이미 구성되어있다. 돈과 능력에 의해, 그것도 허물어지지않는 강력한 카르텔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개인의 노력과 뛰어난 지략에 의해서 어느 정도 위치에 도달할 수 는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좋은 교육, 좋은 시스템은 이미 있는 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능력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모두 자녀들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한국에서도 뛰어난 교육 시스템 속에 들어가 소속되게 하고 있다. 더 이상 아무리 가랑이를 찢어봤자 찢어질 가랑이가 보통 사람들은 없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일까? 공무원에 올인하는 세태를 보면 말이다. 요즘은 고등학교도 졸업 전에 모두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한다. 많은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미리 공무원 사회를 지상 낙원이라고 점 찍은 그들이 과연 행복할까? 아니, 그들을 그렇게 만든 기성세대의 책임은 무엇인가?

얼마전 한 배달 노동자의 사고가 있었다.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의 안전 불감증에 대해 비판하는 댓글이 달려서 유가족이 고통받는다는 뉴스도 함께였다. 그 노동자를 그렇게까지 몰아 넣은 것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 것일까?

공정을 부르짖는 사회는 불공정사회다. 능력주의를 외치는 사회는 사실 불공정사회다. 그러자면 태어났을때 엄마 뱃속에서부터 공정해야하는 것 아닐까? 똑같은 선을 주고 땅!하고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마다 이미 출발선은 다르다.

깨어있는 시민이 다른 사회를 만든다. 소리치는 시민이 세상을 깨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얼버무리는 자, 그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모두 다 선이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선을 넘어야한다. 경계를 넘어봐야 자신이 지나온 길이 보인다. 넘어서기 전에는 결코 알 수없고, 돌아가기 전으로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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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 1944 -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막
앤터니 비버 지음, 이광준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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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 1944

앤터니 비버 | 이광준 옮김 |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고작 두달 남짓한 전투가 이리 지리멸렬하고 참담하게 그려지다니 역사적 고증이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책 곳곳에 들어있는 사진들 역시 현장감을 더한다. 저자 앤터니 비버는 뛰어난 군사학 관련 교수로서 여러 전쟁 관련 논픽션을 주로 썼다. 1941년 독일군의 크레타 침공을 다룬 저서, 스페인 내전에 대한 저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대한 저서 등 여러 전쟁에 대한 논픽션을 통해 권위있는 상을 잇다라 수여한 저력있는 작가다.

이 책 <아르덴 대공세 1944>는 막바지 전쟁의 히틀러의 끈질긴 도박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쟁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르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가해국일까? 피해국일까? 아니면 전쟁에 임한 군인들일까? 애초에 아무런 반발도 못하고 그냥 휩쓸려야하는 민초들일까? 반대로 전쟁에서 가장 나쁜 놈은 누구일까? 솔직히 전자는 대답하기가 힘들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에서 누구 누구가 더 큰 희생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다 가엾고 불쌍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장 나쁜 놈을 찾으라면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바로 위정자들이다. 정치를 잘못하는 사람들, 그릇된 신념으로 국가를 옳지 못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이들... 이들의 특징은 돈과 권위 둘 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그만한 환호성도 흘려듣지 못한다. 작은 속삭임 역시 그들을 위한 찬사로 들린다. 그래서 일까? 히틀러가 망령에서 못 벗어난 이유는 말이다. 모두가 다 자기 세상, 자기 발 밑에 있는 세상같아서...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아무 의심없이 그의 입만을 바라보는 떡고물을 받아먹는 이들이 존재하니 말이다.

갑자기 떡을 만지면 떡고물은 자연스럽게 묻는다고 말한 우리나라의 나쁜 정치인 누군가가 생각난다. 수많은 희생을 내고도 정작 본인은 아무 반성도 하지 않았던 자 말이다.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그도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그의 명령 하에 어린 병사들이, 그것도 아무런 전쟁에 훈련되지도 못한 열여섯, 열일곱 앳띤 병사들이 죽어갔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지막까지 싸워라. 마지막까지 싸우는 자가 바로 승리하는 자이다. "

그 말을 믿은 것인지 모르지만 정말 아르덴에서 독일군들은 마지막까지 싸웠다. 질게 뻔한 싸움에서 그들은 전력을 다했다. 그들에게는 이도저도 였을 것이다. 곧 죽는다는 것... 살아남아도 죽고, 죽으면 오히려 편하다고 말이다.

연합군과 독일간의 전력에서 연합군 내의 권력 다툼도 볼만 했다. 몽고메리와 패튼의 기싸움부터, 아이젠하워와 몽고메리의 누가 전쟁 영웅인가.. 누가 통솔할 것인가..하는 문제까지 말이다. 연합군이란 명목으로 싸우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여러나라에서 모여 군인들을 나눠서 진격한다는 것은 대단한 리더쉽이 필요했을 것이다.

독일과 연합군의 서로 포로를 대하는 방식이 날이 갈수록 악랄해지고 끔찍해졌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포로는 한마디로 항복, 즉 싸울의사를 포기한 것일진대 그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죽이다니... 더군다나 나중에는 연합군 역시 독일의 방식을 따라한다.

전쟁이란 정말 인간이 얼마나 끝까지 타락할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누가 고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누가 내 목에 칼을 겨누는데, 진정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 순전히 몇 안되는 미친놈때문에 많은 이들의 희생을 치뤄서는 더더욱 안된다는 것... 아르덴 대공세 1944를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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