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7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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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 이노은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헤르만 헤세의 청춘의 기록 같은 소설, 왜인지 피츠제럴드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생각나는 [데미안]을 이번 흄세 시리즈에서 다시 만났다. 사춘기 시절에는 책을 읽을 때 많은 영웅들이 등장했다. 일명 아이돌이랄까? 그중 한 명이 데미안이었다. 내게는 범접할 수도 없고 무수한 삶의 통찰력을 지닌 데미안... 내게 그는 찬란하게 빛나는 스타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홀든 콜필드이다. 어쩌면 나의 청춘이었던 시절, 이 소년들은 역시 그 나름의 청춘을 겪고 있었고, 투쟁하고 있었으며, 내게 없는 답을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데미안]은 헤세가 베른에서 융을 만난 후 고작 몇 주 동안 써 내려간 작품이라고 한다. 융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모르는 무의식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작품을 읽어보니 전과 다른 무엇이 보였다. 헤세는 [데미안]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때 죽음을 목전을 둔 에밀 싱클레어라는 청년이 자신의 10대 시절을 회고하면서 작성한 기록이라는 코멘트를 남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읽어보면 에밀은 데미안의 키스를 받으면서 그 속에서 데미안의 존재를 발견하면서 막을 내린다. 아...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데미안은 그저 상상의 인물인지도 모른다는 것... 어쩌면 데미안은 바로 싱클레어 본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 말이다. 이 모두는 에밀의 꿈이었던가... 프란츠 크로머만이 싱클레어가 만난 살아있는 인물이고 말이다. 어찌 되었든 해석은 독자의 마음이니 이런저런 생각으로 다시 읽는 데미안은 무척 재미있었다.

얼마 전 마트에 볼펜을 사러 갔다가 볼펜 이름이 아브락사스 인것을 발견했다. 아마 그 볼펜을 만든 사람이 데미안을 좋아했고, 그중 아브락사스에서 영감을 얻어서 볼펜 이름으로 했을 지도 모르겠다. 데미안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된 것이 난 사실 아브락사스라는 단어였다. 선과 악, 밝음과 어둠, 남성과 여성 등을 포괄하고 이 모든 것이 공존하는 신적 존재로 표현되는 아브락사스...... . 아마 헤세가 추구한 것은 진리 너머 진리, 기독교 너머 기독교 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수많은 구도자들이 여전히 삶과 죽음, 선과 악에 대해 모두가 목이 마르고 진리를 탐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주론적 차원에서 생각하자면 이 모두는 정말 한 점의 티끌에 불과하리라... 선과 악에 대해 고민하고 싸운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허무한 일인지 모르겠다. 선과 악의 개념 자체는 인간의 논리이리라... 상황에 따라 선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모세의 십계명에 적혀있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대목이 무색하게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행위가 영웅시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예는 사실 차고도 넘치지 않는가?

아.... 우리는 그저 우리 안의 데미안, 아브락사스를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데미안의 충고대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아브락사스... 우리가 추구할 것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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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9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이현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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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길』​​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 이현경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이탈리아 샤르데냐 섬에서 태어나서 그 섬을 주제로 여러 작품들을 써온 그라치아 델레나... 이 작가를 이번 흄세 시리즈를 통해 처음 만났다. [악의 길]이란 작품은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서 고치고 또 고친 작품이라고 한다. 개작을 한 이유는 현실적 인물과 구체적 상황 묘사를 해서 삶에 더욱 밀착한 소설을 쓰고자 함이었다니 그만큼 애정이 어린 소설일 것이다.

소설 [악의 길]에서는 명실상부한 주인공 남자인 피에트로 베누가 나온다. 피에트로가 맨 먼저 일거리를 부탁하러 노이나의 집으로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하는 서두는 그 자체로 몹시 인상 깊었다. 서두에서 파악되는 피에트로의 성격은 그 자체로 옹고집스럽고, 거침없이 말하고, 기어코 손에 넣고 마는 집념이 있는 것 같은 캐릭터였다. 흡사 요즘 디즈니 채널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카지노]에서의 최민식 같다고나 할까...

주인공 피에트로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표현한다. 심지어 그가 마리아 노이나를 사랑하는 방식에서도 그것은 드러난다. 엄연히 남편이 있는 앞에서 그녀에게 키스를 하는 도발을 보이기도 하는 피에트로... 어쩌면 그가 프란체스코에게 반감이 있든 없든 프란체스코의 운명은 그 날로 이미 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죄가 없는 프란체스코 로사나는 피에트로의 그녀인 마리아와 결혼을 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영원한 불행의 길로 접어들어야 했고, 그런 참혹한 일을 저지른 피에트로는 그 즉시 검은 아가리 속으로, 즉 악의 길로 떨어졌다.

어쩌면 피에트로가 걸어가야 했던 그 길은 마리아로 인해 열린 것인 수도 있다. 그녀가 애초에 자신에게 구애를 한 피에트로의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그녀 스스로의 마음조차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프란체스코는 희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리아는 피에트로의 마음을 그녀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시험을 했으며 피에트로를 사랑한 사비나에 대한 질투로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마리아와 피에트로, 그리고 감옥에서 만난 안티네라는 사내까지... 이 묘한 삼각관계는 델레나가 말하고 있는 악의 축을 상징한다. 그리고 여기 이제 모든 것의 고리와 그 역학을 알게 된 마리아가 존재한다.

소설 끝부분에서 마리아의 선택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에게는 모든 길이 속죄의 길이 될 터이다. 죄를 고백하든, 그렇지 않든지 말이다.

델레나의 [악의 길]은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유혹에 취약한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 피에트로나 마리아, 사비나, 그리고 안티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바른 선택을 하고, 영원히 구속의 형벌을 받지 않을 현명한 결정을 하는 건 바로 온전한 본인의 몫이다. 모든 것은 한 끗 차이다. 그리고 그 한 끗이 어쩌면 인생 전체를 결정하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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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7주년 기념 개정판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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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유쾌한 처방전... 그 인간관계가 싫어하는 누군가때문에 망가진다면 너무 억울한 노릇이다. 그 내면에 대한 속시원한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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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소리를 듣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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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의 묘미는 서두에 있지 않다. 미스터리는 끝까지 읽는 데 있다. 그리고 아..하는 감탄이 나올때카타르시스...그래서 아마 우리는 미스터리를 읽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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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6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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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노인과 바다] 번역본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이다. 지금도 인터넷 서점 조회 DB를 조회해보면 스크롤을 계속 내려야한다. 어린이판에서부터 만화도 있고 삽화 형식도 존재하고, 그림책으로도 존재한다. 그만큼 헤밍웨이의 작품 중 [노인과 바다]는 광범위하게 알려진 작품이고 회자도 많이 된 작품이라 하겠다.

이번에 휴머니스트에서 다시 번역된 [노인과 바다]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우선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마침표의 남발로 그야말로 읽기 좋게만 여겨진 것을 배제하고 물결 타듯이 원작의 느낌을 살려서 번역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난 끊어지는 문장보다 오히려 이런 문장이 한 호흡 쉬고 읽기가 더 편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섬세한 번역의 기술도 이 속에 숨어있다. 솔직히 난 마지막 문장에서 관광객의 오해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청새치의 뼈인데 관광객은 상어라고 오해를 했을까? 그리고 왜 그 웨이터는 티부론(상어의 스페인어)이라고 말했을까 하는 점이다. 번역자의 후기를 읽고서야 오해가 풀렸다. 웨이터는 아마도 상어의 짓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웨이터는 영어를 못하기에 스페인어로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비슷한 의미의 두 단어만 나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오해는 관광객의 몫이므로 독자든 웨이터든 끼어들 바가 아닌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번역의 맛이 아닐까? 나름 아.. 하는 깨달음과 흐뭇함이 동시에 밀려온 순간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를 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노인의 철저한 근성, 인간의 근성과 신념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난 이번에는 좀 다른 생각이다. 노인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한 소년 마놀린과의 우정이다. 마놀린은 노인 산티아고를 믿었다. 그에게 있어서 노인은 살라오가 아니었다. 노인은 소년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나 같은 살라오도 마음만 먹는다면, 의지만 있다면 이렇게 될 수 있단다. 이렇게 할 수 있단다. 그러니 하물며 마놀린 너야 말해 무엇하랴...... .

노인에게 있어서 바다는 저항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가 잡은 청새치에게서도 그는 연민의 정을 느낀다. 꼭 먹을 거라 다짐을 하지만 오히려 그 다짐이 귀엽기만 한 건 왜일까? 청새치의 힘 빠짐을 걱정하고, 상처를 걱정한다. 바다는 노인에게 친구였다. 하물며 그를 공격한 상어에게서도 산티아고 노인의 분노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살게 한다.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인생은 살 만하다. 초인적인 힘이 나올 수도 있다. 소년 마놀린은 정말 믿음이 있는 순수한 아이였고, 노인 산티아고는 바다를 사랑하는 진정한 어부였다. 이 소설은 진짜 이야기다. 진짜 소년과 진짜 어부가 나오는 이야기 말이다. 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그동안 상투적으로 제기되어왔던 노인의 투지와 신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사랑만이 보인다. 소년과 바다와 청새치와 갈매기와 바다와 등등 삶에의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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