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6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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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노인과 바다] 번역본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이다. 지금도 인터넷 서점 조회 DB를 조회해보면 스크롤을 계속 내려야한다. 어린이판에서부터 만화도 있고 삽화 형식도 존재하고, 그림책으로도 존재한다. 그만큼 헤밍웨이의 작품 중 [노인과 바다]는 광범위하게 알려진 작품이고 회자도 많이 된 작품이라 하겠다.

이번에 휴머니스트에서 다시 번역된 [노인과 바다]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우선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마침표의 남발로 그야말로 읽기 좋게만 여겨진 것을 배제하고 물결 타듯이 원작의 느낌을 살려서 번역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난 끊어지는 문장보다 오히려 이런 문장이 한 호흡 쉬고 읽기가 더 편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섬세한 번역의 기술도 이 속에 숨어있다. 솔직히 난 마지막 문장에서 관광객의 오해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청새치의 뼈인데 관광객은 상어라고 오해를 했을까? 그리고 왜 그 웨이터는 티부론(상어의 스페인어)이라고 말했을까 하는 점이다. 번역자의 후기를 읽고서야 오해가 풀렸다. 웨이터는 아마도 상어의 짓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웨이터는 영어를 못하기에 스페인어로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비슷한 의미의 두 단어만 나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오해는 관광객의 몫이므로 독자든 웨이터든 끼어들 바가 아닌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번역의 맛이 아닐까? 나름 아.. 하는 깨달음과 흐뭇함이 동시에 밀려온 순간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를 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노인의 철저한 근성, 인간의 근성과 신념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난 이번에는 좀 다른 생각이다. 노인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한 소년 마놀린과의 우정이다. 마놀린은 노인 산티아고를 믿었다. 그에게 있어서 노인은 살라오가 아니었다. 노인은 소년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나 같은 살라오도 마음만 먹는다면, 의지만 있다면 이렇게 될 수 있단다. 이렇게 할 수 있단다. 그러니 하물며 마놀린 너야 말해 무엇하랴...... .

노인에게 있어서 바다는 저항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가 잡은 청새치에게서도 그는 연민의 정을 느낀다. 꼭 먹을 거라 다짐을 하지만 오히려 그 다짐이 귀엽기만 한 건 왜일까? 청새치의 힘 빠짐을 걱정하고, 상처를 걱정한다. 바다는 노인에게 친구였다. 하물며 그를 공격한 상어에게서도 산티아고 노인의 분노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살게 한다.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인생은 살 만하다. 초인적인 힘이 나올 수도 있다. 소년 마놀린은 정말 믿음이 있는 순수한 아이였고, 노인 산티아고는 바다를 사랑하는 진정한 어부였다. 이 소설은 진짜 이야기다. 진짜 소년과 진짜 어부가 나오는 이야기 말이다. 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그동안 상투적으로 제기되어왔던 노인의 투지와 신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사랑만이 보인다. 소년과 바다와 청새치와 갈매기와 바다와 등등 삶에의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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