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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외 옮김 / 동아시아 / 2002년 10월
평점 :
너나없이 옆사람과 재잘거리는 커피숍에 가만히 앉아 있다보면 본의 아니게 남의 대화를 듣게 되기도 합니다. 대략 이런식의 대화들 말입니다.
" 그러니까 그 XX타워 총설계하고 감독했던 사람이 우리 언니 친구 동생의 남편이었던거야"
예전 같았으면 '아 몹시 유명한 건축가와 가까운 사이구나, 놀라운데' 했겠지만 이 책 '링크'의 출간으로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언니네 친구 동생의 남편' 은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님을 다들 알게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서너 단계가 건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사이고 전 세계 60억 인구로 외연을 넓혀봐도
'평균 6사람만 건너면 60억인구는 모두 지인' 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널리 알린 책이 바로 AL바리바시 교수의 링크(Linked : The New Science of Networks) 입니다.
출간당시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링크이론이 발표된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놀라워 다들 반신반의 했지만 SNS와 네트워크가 일상사가 되어버린 오늘날엔 마치 '물과공기'처럼 의식하지도 못하고 링크이론 속에서 살아가는 중 입니다.

이게 지금 10억짜리 전화번호부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의 한 장면 입니다. 경찰의 단속 강화로 불안해 하는 김판호(조진웅분)에게 최익현(최민식분)은 수첩을 하나 꺼내 보이며 호기롭게 소리칩니다. "이게 지금 10억짜리 전화번호부다!" 종친회, 동문회, 향우회 등으로 촘촘히 엮인 그물를 타고 연결된 사람들에게 돈을 뿌려 만든 연줄위를 줄타기하며 살아가는 최익현의 삶은 링크 이론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는 셈 입니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친구의 친구를 타고 슥슥 넘어가다보면 어느새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데 까지 전달되는 네트워크의 위력은 SNS속에서 더욱 확연히 확인됩니다. '일촌' 이라는 개념으로 한국 고유정서를 파고들어 우뚝 선 싸이월드는 이제 이촌, 삼촌, 사촌으로 관계맺기 방식을 확장시켜 놨습니다. 나의 일촌들이 알지만 나는 모르는 이촌, 나의 이촌들은 알지만 내가 모르는 삼촌... 이런식으로 관계를 확장시키면 대략 4촌 이내에서 가입자 천만이 넘는 포탈사이트 회원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이게 됩니다. '6단계 안에 60억 인구의 대다수가 연결된다" 는 바리바시의 링크이론이 SNS에 적용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등의 SNS들이 '친구추천' 기능 또한 이런 방식을 적용하고 있고 그 활용도가 높습니다.
이런 네트워크의 마술을 가능한 이유는 일종의 인맥 허브(HUB : 결절지. 평균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알고 중개해 줄 수 있는 사람)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 덕택입니다. 이러한 허브나 커넥터들을 통해 타인과 나 사이는 비약적으로 단축됩니다. 트위터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운데 유명 아이돌, 작가, 정치인과 같이 많은 사람들과 '친구맺기' 를 하고 있는 트위터리안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용자들이 마치 감자뿌리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허브들을 중심으로, 혹은 허브들의 중개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블로그들끼리 어느샌가 클러스터(Cluster: 집적체) 를 형성하게 됩니다.

클러스터
자 그렇다면 클러스터들은 고립된 섬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또 보여주는게 링크이론입니다. 클러스터 내에 커넥터라 할만한 대상이 있다면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집단들 사이에도 다리가 놓이게 됩니다.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상의 사용자들은 각자 자기들의 성향에 따라 일종의 고립된 섬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선거, 연예인 스캔들, 뉴스속보같은 사건이 터지면 리트윗, 스크랩, 리플을 따라 순식간에 전파되는 모습에서 우리는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바리바시 박사가 제안한 네트워크의 모식도
SNS는 커녕 인터넷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10여년 전에 출간된 책 링크의 내용이 오늘날 우리의 생활속에 착 맞아떨어지는 모습은 전율에 가까울 정도 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네트워크는 힘이 세다는 사실 입니다. 수십 수만, 수억 사이에 형성된 네트워크의 무시무시한 전달속도와 파급력은 물리적 거리를 뛰어 넘게 됩니다. 인터넷의 탄생부터 소련의 핵전쟁에 대비한 미 국방성의 연구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가 네트워크의 괴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앙집중형이나 탈집중형의 "조직구도" 는 거점이나 수뇌부가 무너지는 순간 붕괴되고 맙니다. 여기에 반해 분산형을 갖춘 거미줄 구도의 네트웍의 생명력은 질기고 파급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지요.인터넷과 정보통신이라는 21세기의 총아들은 이 네트워크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뉴스가 랜선을 타고 RT되고 스크랩 되는 현실을 상기시켜 봅시다. 책 링크속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고 곧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가 됩니다.

네트워크이 세가지 형태 분산이 힘이 세다!
결과적으로 바리바시 박사는 아마 이런 말이 하고 싶었을 겁니다. 이제는 조직이 아닌 네트워크의 시대입니다. 수직적 구조가 지배하는 관료형 집단이나 기업의 문제점들이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사회운동에 있어서도 'XX회 XX지부' 처럼 계단형 구조를 갖춘 조직들의 문제를 이미 여러 사람들이 숱하게 지적해 왔지요. 그 대안으로 제시된 '의로운 개인주의자들의 느슨한 연대' 가 바로 이 링크이론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아도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들의 힘은 강합니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쉽게 뿌리 뽑을 수 없고 함부로 통제할 수 없는 네트워크의 역동성, 폐색된 조직이 갖추지 못한 최대의 강점 입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조직이 아닌 네트워크의 시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