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 - 아파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김은식 글, 박준수 사진 / 브레인스토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동대문운동장을 읽고

1971년도 32일 처음으로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한 날이다. 시골 농촌 마을에서 천운으로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그것도 국비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으니 내 자신에게는 가장 획기적인 날로 기억이 되고 있다. 아버님의 사업 실패와 함께 완전 기울어져버린 가정 형편에 중학교에서 공납금도 제대로 내지 못해 집으로 돌려보내졌던 시간이었으니 고등학교 진학은 생각도 하지 못할 위치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였다. 시골에서 그냥 일을 해야 할 위치에서 서울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는 데에 얼마나 자긍심이 있었는지 추억해본다. 입학한 날부터 관심을 갖고 행했던 것 중의 하나가 서울을 많이 알자.’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서울을 누비고 다녔다. 우선 시내버스 번호와 행선지를 익히고, 많은 문화유산 답사는 물론이고 당시 종로 일대의 학원가를 포함하여 남산과 청계천의 헌책방 가, 서울역사 주변, 뚝섬 등 한강 유역 등이다. 특히 이모님 댁이 신설동 부근이어서 동대문야구장도 자주 보곤 하였다. 역시 사람 많고, 차량 많고, 건물도 높고 많은 서울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로부터 부여받은 별명이 있었다. 일명 노박사였다. 시골 놈이 시골 놈 답지 않게 많이 안다는 뜻이었다. 물론 성이 ()’씨이지만 친구들은 영어로 ‘no’로 하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촌놈으로 놀리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런 연고로 당시 인기프로그램인 KBS방송국의 백만인의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월말 결선까지 갔었고, MBC방송국의 라디오 퀴즈프로그램에도 출연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 고등학교 시절의 최대의 추억 하나는 바로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이다. 솔직히 고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야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였고, 친구들과 한 번 해보지도 못한 구기였다. 그런데 입학한 고등학교에 바로 야구부가 입학 전 해에 창단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입학한 이후부터 경기가 있을 때마다 동대문운동장으로 응원을 가기 시작하였다. 개인적으로 친구들과 갈 때도 있었지만 역시 별미는 학교가 단체로 갔을 때이다. 단체로 갈 경우는 대회에서 성적이 좋은 경우가 해당이 되지만 운동장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응원할 때의 고등학교 당시 모습은 생각만 해도 힘이 솟곤 한다. 시골에서 자연을 벗 삼으며 다듬었던 목청을 마음껏 지르며 함께 했던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그 동대문운동장이 헐리었고, 운동장과 많은 관련을 맺고 있던 사람들의 추억과 마음들은 어떻게 보상을 받아야 할지...물론 더 나은 모습으로 개발하기 위한 조처라고 하지만 많은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많은 아픔과 함께 기쁨을 간직하고 있는 동대문운동장에 관련한 솔직한 글과 사진들은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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