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족을 믿지 말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이선 옮김 / 김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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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황당하고 자극적인 제목이다. "네 가족을 믿지 말라"? 아니, 이 세상에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 가족인데, 가족도 못 믿으면 누굴 믿으라는 건지. 그저 그런 코미디류의 소설인가 싶어 던져두려보니 빨간 표지에 흥미로운 제목이 아무래도 눈 앞을 가린다. 결국 페이지를 넘기고야 만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도톰한 두께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넘어간다.

 

다들 짐작하셨겠지만 이 책은 사랑과는 관계가 멀어보이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진부하기 짝이없는 스토리를 가졌다. 그럼에도 손을 뗄 수 없는 재미는 리저 러츠라는 작가의 능력 덕분일 것이고, 가족의 독특한 직업 때문이겠다.

 

주인공인 스펠만 가족의 가업은 사설탐정이다. (좋게 말해서 사설탐정이고 가족들의 비밀이라곤 두고 보질 못하는 뒤 캐기 전문인들이랄까.) 전직 경찰관인 아버지 앨버트와 딸 남자친구 뒷조사가 취미인 어머니 올리비아, 죽다 살아나 문제만 일으키는 레이 삼촌, 전 남자친구 목록을 만드는 큰딸 이자벨, 유일하게 사생활권을 주장하는 변호사인 큰아들 데이비드, 미행이 취미인 늦둥이 막내딸 레이. 이들이 바로 스펠만 가족의 대단한 구성원들이다.

 

책은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적절히 섞이면서 진행된다. 이야기는 대부분 큰딸인 이자벨의 시선으로 보여지는데, 중간중간 메인 에피소드와 어우러지는 애인구하기 고군분투 장면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스펠만 가족들은 (아니 가족이라고 칭하기도 민망할정도로) 서로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매일같이 감시 감시 또 감시. 심지어 딸의 방에 도청기를 장치하고, 중학생 막내딸은 가족들의 뒤를 캐며 협상거리가 될 사진을 찍고 다닌다. 딸 남자친구 뒷조사는 기본. 도대체 이 가족을 보고 있자면 '세상 무서워 어디 살겠나!'란 생각이 번뜩 든다.

 

그러나 한참을 읽고 있으면 그게 이 사람들의 표현방식이구나 싶기도 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고, 이들은 미리 뒷조사를 하고 따라다니며 자신의 애정을 과시하는 게 아닐까하는.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이자 대박 사건이었던 막내딸 레이의 행방불명 사건은 가족에 대한 레이의 무궁한 사랑을 보여준다. 비록 그 방법이 어긋나긴 했지만 말이다. 가족을 뭉치게 하려던 중학생 소녀의 발칙한 생각은 오히려 귀엽게까지 느껴진다.

 

혹자는 이 책을 읽으며 사생활권을 운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설의 묘미는 역시 즐거움에 있다는 나의 지론에 의하면 이 책은 이렇게만 읽어도 아깝지 않을지 모른다. 쌈빡하게 읽고 어이없는 가족에 폭소와 무한 애정을 담은 표정을 한번 씨익 날려주고. 여기에 더해 좀 많이 미웠던 나의 가족들에게도 웃음 한 번 날려주는 여유까지 보인다면 금상첨화다.

 

지금 가족들에게 짜증이 많이 나있는 분, 우리 가족은 좀 이상해 라는 분, 우리 가족도 변화가 필요해 라는 분들은 이 책을 가족들과 돌려보길 권해본다. 자기도 모르는 새 거실에서 큭큭거리는 가족들의 모습이 왠지 상상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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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 초상
이갑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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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한국 소설을 다양하게 접하면서도 외면했던 유일한 분야가 추리 공포 소설이었다. 두셋의 이름 난 작가가 있는 듯도 했지만 B급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편견에 영 손이 가지 않았다. (짧은 눈이 보지 못한 좋은 작품과 작가에겐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그러나 브라보! 적절히 조였다 풀어내는 긴장과 치밀한 스토리, 방대한 지식으로 무장한 소설 한 편을 만났다.
 
한국 작가 이갑재의 <로맨틱한 초상>이다. 겉 표지에 소개된 '아트 사이코 팩션'. 거창한 장르군 하고 비꼬인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이 책 좀 장난 아닌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설가가 있다 말이야? 정말 한 편의 영화네.'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소설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정신과 의사인 곽 원장, 곽 원장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영, 사건을 풀어나가는 반장과 형사들, 범인의 희생자인 여자 교수들과 범인까지. 인물들의 관계는 단순한 듯 얽혀 사건을 진행시키고, 그 끝을 향해 간다.
 
일련의 사건이 벌어진다. 여자들이 죽어나간다. 사인은 복어독. 여자들이 죽어가는 2시간 동안 살인자는 무엇을 한 것일까.
 
연쇄 살인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스럽지만 이 소설의 살인범은 그 정도를 뛰어넘는다. 그의 상징은 여자의 산도 속에 넣어놓은 메뚜기(사실 황충으로 메뚜기와는 다른 종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재앙 중 하나에 나오는 곤충이다.) 경찰은 수사에 보조하는 심리학 교수와 생물학 교수의 도움으로 살인범의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선다. (그녀들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점점 살인범의 정체가 조여지고, 독자들은 시대 말의 경악적인 광인을 만나게 된다.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스토리의 진행도, 은근한 공포를 불러내는 긴장감도 탁월하다. 심리학적 전문 용어와 성경 속 의미와 음악적 지식을 이야기에 자연스레 어울린 점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곤충들의 행위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였다. 교접 행위나 식(食)행위에 대한 묘사는 읽는 이를 전율케 하는 무언가가 있다.
 
책을 덮고 나니 두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첫 번째는 이 대단한 작가의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 (안타깝게도 이 책의 출간 후 고인이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 이 책을 1999년에 읽었다면 더 흥미로웠을 텐데' 라는 점. 시대 말의 불안함을 한 사람의 심리적 광기와 예술로 표현한 작품이니 정말 그 시기에 읽었다면 그 느낌이 얼마나 잘 전달되었을까! 그러나 지금이라도 만났으니. 이 책을 숨겨진 교과서 삼아 발전할 한국 추리 소설의 다음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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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2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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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여행기로 손꼽히는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 한 편의 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김탁환의 손과 입을 통해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났다. 정갈한 맛은 그대로, 팩션이 가지는 흥미로움과 다음 장을 궁금히 만드는 끝없는 이야기는 독자를 위한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혜초>를 통해 8세기 실크로드 위를 가로지른다.

 

처음 책을 집어들 때만 해도 자리잡지 않은 이야기에 마치 꿈결을 걷는 기분이었다. 읽었다 내려놨다 반복하기를 수어번, 1권의 반이 넘어갈 무렵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 풀었다 잡아챘다 하는 줄의 끝머리에 달린 사람의 안타까움이 이럴까. 빨리 넘어가고 싶지만, 좀체 빨라지지 않는 독서가 아쉽기만 하다.

 

김탁환은 하나씩을 건너 뛰며 혜초의 기록과 현재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려준다. 이야기는 교묘히 맞물리면서 어느 하나 빼먹고 넘어가지 못하게 독자를 잡는다. 책을 덮은 후에도 혜초의 기록 속 단아한 말씨가 맴돈다. '-합니다'체의 다소곳한 말투는 그의 모든 고난과 아픔까지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혜초와 당나라의 장군인 고선지가 이야기의 주 축을 이룬다. 이들이 역사적 인물로서 소설을 이끈다면, 독자의 즐거움과 흥미로움을 만드는 허구의 인물로는 상인 김란수와 무희 오름, 야곱이 있다. 처음에는 그저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친 인물들로 시작하지만 그 뒤에는 상상하지 못한 음모와 길고도 긴 이야기가 숨어있다.

 

긴 사막 길, 모래 폭풍을 맞은 고선지는 겨우 목숨을 지켜 돌아오지만 돌림병과 함께 장군으로서의 위기를 맞는다. 그런 그를 살릴 수 있는 한 가지는 같은 모래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신라 승려 혜초 뿐. 우연히 길을 같이 한 혜초와 란수, 그 뒤를 쫓는 고선지와 오름. 기록을 통해 밝혀지는 혜초의 여정 속 만남과 사건들은 점점 우리를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얽히고 설킨 이야기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종교를 넘어선 종교와 사람을 넘어선 사람을 그리는 김탁환의 긴 글은 재밌으나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소재가 된 혜초가 쉽지 않았기에, 그가 걸어간 실크로드로의 따라감이 쉽지 않았기에. 맛깔난 그의 글이지만 나 또한 사막을 헤매듯 그의 글 속을 헤매였다. 여느 소설과 같은 말끔한 마무리를 하기에 나는 아직 너무 작은 존재인가보다. 언제든 기나긴 하루 다시 한 번 조용히 앉아 만나고 싶은 글이다. 혜초와 고선지의 그 깊은 여로를 마음으로나마 다시 만나봐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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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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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반엔 살짝 무슨 말을 하는지 고개를 갸웃, 중반이 넘거가자 스피드 업, 책을 덮을 때쯤 되니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이언 매큐언! 동시대 최고의 작가란 말이 아깝지가 않다."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해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서술적 능력에 지식의 보고는 보너스, 자신만의 색으로 입혀내는 탁월함이란!

 

이언 매큐언은 올 초 영화 <어톤먼트>의 개봉과 함께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작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소개된 바 있겠지만.) 이후 <암스테르담>, <첫사랑 마지막 의식>, <체실 비치에서> 등을 통해 사람들이 회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어두운 속성을 작품의 주 소재로 삼아왔다. 그러나 무작정 어둡고 파괴적이지만은 않다. 이 점이 사람들을 매혹하는 이언 매큐언의 또 다른 매력이지 않을까.

 

주인공 '조'는 연인 '클라리사'와의 피크닉 중 풍선 기구 사고를 목격하고 사건의 휩쓸린다. 비극적인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가 마주친 것은 젊은 남자의 비상식적인 사랑 공세였다. 이후 스토커라도 되는 듯 그의 일상을 파고드는 남자 '패리'로 인해 조의 삶은 망가져간다. 연인과의 사랑은 비틀거리고, 주변 사람들은 마치 그를 미친 사람처럼 바라본다. 조는 정말 미쳐 환각을 보는 걸까?

 

메인 사건인 풍선 기구 사고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갈래를 뻗어나간다. 조와 패리, 조와 클라리사, 조의 내면, 사고로 죽은 로건의 부인인과 주변인물들. 각각의 이야기들은 서로 맞물리지 않을 듯 교묘하게 맞물리며 하나의 큰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사이사이에서 반짝이는 지적 유희의 즐거움도 놓칠 수 없다.

 

<이런 사랑>에서는 그간 보여줬던 겉으로 보여지는 폭력과 고통이 다소 인간의 내부로 들어왔다. 무의식이라고 하는 세계, 생각과 공상 - 현실 세계 사이의 부조리들이 행동보다는 생각과 인물 간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조의 독백을 듣고 있자면 마치 나의 이야기가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듯 해서 놀랍고, 뻔하지만 우리가 놓치곤 하는 진리에 다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그렇다. 매큐언의 신작을 통해 나는 또 한번, 인간의 처절하고 어리석은 자기 방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버리고 싶어하고 아니라고 외면하고 싶어하지만 매일같이 하고 있는 일 -바로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변명하고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어디까지 속일 수 있는가.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로건 부인에게 남편의 용기에 대해 얘기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나의 무고함, 나의 결백을 말하려고, 그 결백을 확인하려고 온 것이다. -p.153

자신이 옳다고 끊임없이 주장하는 자신의 행동은 얼마나 옹졸한 자기위안일 뿐인지. 그러나 그 사소한 행동을 위한 우리의 발악이란, 차를 타고 그 먼거리를 할 말도 없이 떠나게 만들고, 끊임없이 자기를 속이고 있다. (심지어 속이고 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하나의 망상에 빠진 자는 어디까지 무서워질 수 있을까.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란 벙명으로 소개되는 패리의 조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작은 방에 웅크리고 앉아 조몰락거리며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지도 않은 우리의 상호작용으로 희망과 실망의 드라마를 써 내려가는데. 그는 언제나 물리적 세계를 세밀히 들여다본다. 물리적 세계에 놓인 사물들의 우발적인 배치, 혼란스러운 소음과 색채를 들여다보면서 현재 자신의 감정 상태와의 연관성을 찾아내려 한다. 그렇게 해서 또 늘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한다.  ... 이것은 자기 지시적인 사랑의 감옥이었다. -p.202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패리의 모습은 그저 미친 놈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속에서 그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한다. 아니 누구라도 한 번쯤 그러지 않았을까. 나를 중심에 둔 사고. 나의 만족을 위한 나만의 세계를 세우는 일 말이다.

 

언제나 내 속의 숨겨진 응어리를 끄집어내는 이언 매큐언. 그러나 인간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기에 그의 글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책을 덮고서도 얼마간 이언 매큐언 이야기 속에서 맴도는 나의 생각들. 자유로운 사색의 시간을 준 그에게 다시 고마음의 마음을 전하며. 발걸음은 아직 읽지 못한 책을 찾으러 서점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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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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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은 소위 정적인 활동이다. 책 한 권만 있다면 서너 시간을 너끈히 보낼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읽다'가 '읽어준다'는 행위로 탈바꿈하는 순간 관계가 끼어든다. 읽어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 양자간의 관계성이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바람직하게도,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도 치닫곤 한다. <책 읽어주는 여자> 에서 나타내는 관계는 위험하다. 애써 외면하지만 책을 매개로 한 행위는 은밀한 성의 세계까지를 탐색한다.

주인공 마리-콩스탕스 G는 남편은 있고 아기는 없는 무료한 부인이다. 기차게 멋진 목소리를 이용하기 위해 어느 날 신문에 광고를 낸다. '젊은 여성. 가정 방문하여 책을 읽어드립니다. 문학 서적, 문헌, 기타 서적.' 광고회사 사내도, 노스승 롤랑 소라도 무언가 걱정한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고객이 생긴다. 장애인 소년, 공산주의 노부인, 사장, 어린 소녀, 늙은 판사. 하나같이 마리의 목소리에 감탄한다. 왠지 중세시대에나 어울릴법한 '책 읽어주는 여자'는 호평이다. 그러나 한 번, 두 번의 만남이 지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분명 책은 읽고 있지만 마리의 행동은 책 읽기 그 이상이다.

행동의 변질이 극에 치닫는 순간 결국 마리는 실업자가 될 것임을 확신하며 문을 닫고 나온다. 독자인 나는 마리의 행동에 박수를 쳐야 할까,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길 기다려야 할까.

프랑스 소설가 레몽 장의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 읽은 후의 느낌은 한 마디로 프랑스적이다. 모호하며 위험한 느낌. 그 무엇보다 도덕적인 행위일 책읽기가 어떻게 이리 요염한 느낌이 된 것일까. 저자는 마리의 입을 빌려 그 근거를 슬쩍 제시한다.

'이 활동은 소리 없이 침묵 속에 이루어지는 것을 크게 소리 내어 읽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잘못이 있다면 있는 것이다.' -P.207
'책 읽어주는 여자는 '읽어'야 한다. 남이 요구하는 것을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 그 요구가 지나친 것만 아니기를 바라지만. -p.242

문제는 책을 읽어주는,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버린 관계였다. 텍스트가 목소리로 바뀌어 공기 속에서 울림으로써 글은 새로 태어난다. 마리가 곧잘 글을 읽으며 '나는 정말이지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고 말하는 것은 이를 반영한다. 더 이상 모파상도, 보들레르도, 마르크스도 없다. 마리의 목소리뿐이다.

독서만큼 은밀한 개인적 행위가 또 어디 있을까! 겉으론 얌전히 텍스트만을 읽어내려 가지만 그 속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우물. '책'과 '목소리'가 어우러진 <책 읽어주는 여자>는 종종 직접 목소리를 내어 읽어본다면 그 맛이 더욱 아스라하게 느껴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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