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에 쓴 수필
정목일 지음, 이목일 그림 / 문학수첩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네 삶은 얼마나 빡빡하고 좁았던가. 서정 수필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그의 글들을 읽다 보면 무엇인가 몸에서 무엇인가 하나하나 빠져나감이 느껴진다. 글자들을 잡으려는 머리 속 지식들까지도 한 거풀씩 벗겨지는 게 처음엔 어색하기만 하다. 소설을 읽는 마냥 앞으로 돌아가 다시 글자를 머리에 집어넣는데 금방 다시 지워져 내린다. 아이고야, 왜 그런가 했더니 제목 봐라. 모래밭에 쓴 수필이란다. 모래밭에 쓴 글이 어디 오래 남아있겠나. 내 머리도 모래밭이 된 듯 하다.

 
그러나 글자는 지워져도 그 감정만은 오롯이 남아 몸을 적셔 내린다. 내가 책을 붙잡고 읽는지 책이 나를 붙잡고 읽는지 모를 일이다. 글 한 편을 곱씹기 전에 손과 눈이 먼저 다음 장을 넘긴다. 왠지 모르게 책을 내려놓을 수 없다.
 

처음엔 수필집이라 하여 조금씩 읽어나갈 참이었는데, 어째 읽기 시작하니 놓기가 아쉽다. 그저 이 얘기 저 얘기 들려주는 맛에 취했나 싶다. 결국 앉은 자리에서 수십 페이지가 훌떡훌떡 넘어간다. 
 

네 가지 이야기다. 별에 대한 명상, 타악기의 명인, 연꽃의 집, 아름다운 간격. 무슨 기준으로 나누어놨나 슬쩍 다시 열어보는데 봐도 모르겠다. 그저 가까운 풍물을 읊고, 사람 이야기도 몇 번 해보고, 과거로 밟아 들어가는 길도 걸어본다. 자신의 이야기도 슬그머니 꺼내놓는다.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아야겠는지 수필이란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글이라더니, 정말 정목일이란 수필가가 오롯이 글 속에 남아있다.

 
그럼에도 아직 붙잡을 욕망으로 가득 찬 나에게는 다소 먼 그대였는지 모르겠다. 그저 왔다 가는 글귀들이 잠깐 마음을 편히 해주었고, 어느 저녁 놀 소파에서 뒹굴 거리며 듣는 할머니 이야기 같아 푸근했을 뿐이었다. 수필을 아는 사람, 지나온 삶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 공감하기 쉽지 않을까. 그 구절 하나가 마음 속에 자리잡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책 중간 어디쯤 경봉선사와의 만남 이야기가 있었다. 처음 친견한 자리에서 이리 물으셨다는 경봉선사.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애꿎은 대답을 하고 모르겠다 해야 했는데 라며 후회스러운 저자의 이야기가 아직은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경봉선사의 물음 하나는 그대로 마음에 박힌다.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나라면 어찌 대답할까. 이리 대답하진 않을까. "그럼에도 길 따라 왔지요."라고. 아니, 그 자리에선 말 한마디 못하고 애꿎은 웃음만 지을 지 모를 일이다.
 

수필이란 놈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매한가지 아닐까. 사람 사는 걸 적은 글이라면 거기에 무슨 길이 있겠나. 소설처럼 이리 쓰라고 알려줄 길이 있는 바도 아니고, 그저 자신이 걸어온 시간, 지혜로 쓰는 글인 것을. 아니, 비단 수필 뿐이겠나. 인생살이가 길에 대한 질문일지 모른다. 그래, 당신은 없는 길 어찌 가고 있습니까.

 
그저 한 판 잔잔하니 쏟아 부은 글이라 지겨울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웬걸 사람 잡아 끄는 힘이 여느 자극적인 소설 못지않다. 오늘은 책 한 권 집어 들고 권하러 할머니 댁을 찾을까 한다. 읽으시는 내내 그렇지, 이거구나 하는 추임새를 넣어가시며 읽으신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추천이겠는데. 
 

잊을 뻔했는데 똑같이 목일이란 이름으로 맺은 글, 그림의 인연이 놀랍다. 나무 아래 뜨신 햇살 받으며 책을 써내지야 않았겠지만 왠지 그렇게 읽는다면 책 맛이 더 살아날 법하다. 투박한 듯 정겨운 글과 그림의 매력에 한 판 빠져보실라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사스! 그리스
박은경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활자와 얼마만큼의 그림이나 사진들로 채워진 비슷한 여행 책들. 그러나 여행 책을 시작할 때의 느낌과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어떤 책은 '아, 많은 걸 알았다'라며 덮을 것이고, 때론 '가보고 싶다', 또는 '아, 행복하다.'며 책장을 덮기도 할 것이다. <야사스! 그리스>를 굳이 그 분류에 따라 나누자면 행복감을 맛보게 해 주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엔 그저 새하얗고 새파란 집과 하늘과 바다의 풍경에 마음을 뺏겼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활자보다는 사진을 보며 역시 멋지네. 라는 정도의 감상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1/3 정도가 넘어가고 여행지는 모두 가 보는 곳에서 저자만이 가본, 저자만이 느낀 감정을 오롯이 담은 곳으로 바뀌어갔다. 사진과 어우러져 글이 하나하나 마음 속을 침투하기 시작한다.

 여행자. 여행자는 자유롭고 아름답다. 책의 저자인 박은경을 따라 가는 독자의 마음도 자유롭고 아름다워진다. 그렇다고 책 속에 빠져 그 곳을 여행하는 것 같다, 라고 하면 과장이 심한 뻥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정신과 마음과 생각이란 게 있지 않은가. 몸은 이 곳에 남을지언정 우리의 머리만은 저자를 따라 그리스 곳곳을 걸어 다닌다.

 어쩜 이렇게 아름답고 그러나 소박하고 정겨울까. 여행 책을 보면 언제나 느낀다. 왜 사방에선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도는데 유독 여행지에선 저렇게 행복한 모습만 보이는 걸까. 저자들이 불행하고 힘든 건 다 쏙 빼놓고 좋은 것만 담아서 그런 걸까.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아, 장소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다. 일상이 아닌 곳으로의 떠남. 그 행위 자체가 슬픔과 불행을 잠시 잊게 하는 건 아닐까. 아마 여행자들의 눈에는 불편과 힘듦 조차 행복으로 변하는 건지 모른다.

 그런 행복이 그리스 곳곳에서 퍼져 나온다. 크게 미코노스, 산토리니, 크레타 섬을 지나며 듣는 그녀의 그리스 여행기는 어딜 다녀왔다, 여기엔 뭐가 있더라 라면서 뽐내지 않아서 좋다. 무엇이든 적당히 편한 사진과 적당히 마음을 적시는 글과 그냥 일기 쓰듯 써 내려간 글이라 좋다. 굳이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아도 그저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맘속에 쏙 들어오는 즐거움이 있어 행복한 책이다.

 이것뿐이어도 즐거운 책 읽기지만 이 책에는 과하지 않은 정보도 속속이 숨겨져 있다. 잘 여행가는 법, 괜찮은 음식, 추천 가게들 등등. 언젠가 그리스 여행을 간다면 들고 가기에 아쉽지 않을 만큼의 알짜배기 정보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을 당신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 즐겁고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말로는 전하기 힘든 기분 좋음. 하양과 파랑이 그려내는 맛스러움. 혼자 아끼고 보기엔 아까운 책. 설사 몸은 이 곳에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그리스 어느 카페 앞에서 만날 당신과의 만남이 기대되는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덧. 야사스, 마치 어느 신전 주인의 이름일 법한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궁금한 사람은.. 직접 만나보시길. 그럼, 에프하리스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멜라니의 바이올린
허닝 지음, 김은신 옮김 / 자유로운상상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이었던가. 전쟁의 참사가 그대로 남은 골목에서 피아노를 치는 한 남자를 만났다. 유대인이란 이름 아래 고통 받아야 했던 한 인간의 고뇌를 잘 드러낸 영화 <피아니스트>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몇 년 후, 똑같이 유대인이란 이름 아래 고통 받아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났다.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중국 상하이로 먼 걸음을 한 리랜드 비센돌프다.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저자인 허닝은 본래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그런 그가 우연한 기회에 관심을 두게 된 상하이 유대인들. 그 작은 관심에서 이 책은 탄생했다. 모두가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고 유대인을 내친 시기에 그들을 받아들인 중국인들. 일본에게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살아나간 중국인과 유대인들의 용감한 이야기가 <멜라니의 바이올린>에 잘 녹아있다.
 

나치에 의해 딸을 잃은 비센돌프는 딸 멜라니가 자신의 생일 때 만들어준, 세상에 하나 뿐인 '멜라니의 바이올린'을 들고 중국 땅에 들어선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의 자존심을 버리고 적당히 일본인과 타협해 살아갈 수도 있던 그. 그러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줏대를 지키며 유대인의 자긍심을 지켜나간다. 
 

이야기는 그가 중국인 자매 루샤오넨, 루양 남매를 만나고 또 다른 바이올리니스트 정치인인 일본인 야스히로를 만나며 급류를 탄다. 반일인물로 찍혀 죽음 당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두 남매와 친일인물이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비센돌프는 서로를 가족과 같이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낸다. 한편 비센돌프의 바이올린을 노리며 어떻게든 그를 이기고자 하는 야스히로.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긍심, 가치에서도 그는 비센돌프를 이기지 못한다.
 

저자는 비센돌프와 야스히로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유대인에 대한 생각, 강압적이고 제멋대로인 일본인에 대한 비판들을. 권력을 가진 강자 앞에서 한 없이 약자일 수 밖에 없는 비센돌프지만, 어느 대화에서도 자신의 뜻을 낮추지 않는 그의 모습은 용감하다. 때론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믿고 몸소 표현할 수 있는 그의 모습에 진정한 용기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강자에 대한 약자의 소신 있는 용기는 비센돌프 뿐 아니라 루샤오넨, 루양 남매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가감 없이 보여진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 어떤 어려운 상황도 이겨내는 용기, 믿음이 있기에 당당할 수 있는 자세. 그런 그들의 용기가 다른 유대인과 중국인에게도 전해진 걸까. 처음엔 나약한 그들이지만 점차 대응할 용기를 얻는다. 결국 얻어낸 자유. 물론 전쟁의 종식은 그들의 힘이 아니었지만 힘든 시간을 이겨낸 그들의 의지와 용기가 있었기에 다시 웃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으리라.


주제도 소재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도 괜찮은 소설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2% 부족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래 들여다봤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곧바로 전해지지 않는 막연한 느낌. 감동은 있지만 절절하게 가슴까지 파고들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기억하리라, 암울한 시간을 이겨낸 그들의 용기를. 머리 속 어딘가에서 루양과 비센돌프가 함께 켜는 '그날'의 변주곡이 들리는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미터만 더 뛰어봐! -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당신을 위한 인생의 반전
김영식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읽으면 심장이 뛰는 책? 흥! 소리가 먼저 나왔다. 자기 계발서가 판을 치는 시대 또 하나의 계발서가 추가되었나 보다 싶었다. 그래도 제목은 좀 신선하네, 라며 집어 든 책은 그러나 정말 심장이 뛰는 책이었다. 과거가 얼마나 힘들었건 지금 성공한 그의 모습을 보며 뻔한 소리나 하겠거니 싶었는데 있는 건 있는 대로 다 내보이며 솔직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뛰게 하는데 충분해 보인다.
 

천호식품의 오너인 김영식 회장의 이야기다. 한 때 부산에서 돈 많기로 100위 안에 들었던 그가 쫄딱 망하고 오뚝이 근성으로 다시 살아나 지금의 그가 되기까지의 절절한 삶의 이야기들이 궁상맞지 않게 쓰여있다. 아니, 궁상맞은 부분까지 솔직하게 고백되어있다. 정말 찢어지게 힘들었던 시간도 그대로 담겨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그의 어투는 담담하다. 지금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어투 또한 담담하다. 괜한 겸손함이라도 표현했으면 얼씨구, 놀구있네 라는 소리가 나왔을지 모르지만. 김영식이란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난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성공한 사람 입에서는 무슨 소린들 틀린 소리가 나오겠냐는 심히 삐딱하게 배배 꼬인 심사 때문에. 그렇기에 이 책 또한 처음에는 찔끔 읽다 덮어두고 다시 찔끔 보고를 반복했다. 그런데 1/3쯤 지났을까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휙휙 넘어가기 시작한다. 정말 지금의 자신을 위해 발로 뛰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 글을 통해서 지면을 넘어 전해진다. 
 

인상적이었던 말을 적으려 보니 너무 많아 요약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만큼 성공한 사람 이야기라면 질색하는 나에게 한 마디 한 마디가 절절히 와 닿았다. 아, 이렇게 해봐야지. 저렇게 하면 성공하는 사람의 모습이 되겠구나. 난 이런 점이 부족했구나. 속으로 끊임없이 피드백이 오간다. 단순히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는 게 아니라 정말 김영식 회장이 내 앞에 앉아 이래 저래 이야기해주는 기분이다. 그렇게 때론 혼나는 기분으로 나 자신의 약점 목록을 하나하나 머리에 집어넣는다.
 

아마 점점 편해지는 세상에 그저 적당히 편히 살다 가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적당주의가 팽배한 사회에 사실 이렇게 열정적이고 옹고집인 김영식 회장이 이.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이상한 것이라면 백 번이라도 닮고 싶은 욕심이다. 책의 서두에서 그도 말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성공한 사람을 벤처마킹 하라고. 그래서 나는 따라 하련다. 그가 알려준 비법들을. 
 

그 중에서도 알짜배기 포인트들을 콕콕 집어 나 혼자만 날름 먹으려다 슬쩍 공유해 볼까 한다. 하나, 약속 시간 15분전 나는 어디 있는가?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내 경우 대부분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시간에 맞을까를 고민하며 지하철에 있던가, 약속장소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그런 시간들. 성공하기 전에도 성공한 후에도 변함없이 15분 전엔 약속 장소에서 매무새를 가다듬는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팍 숙이도록 부끄러웠다. 사실 10분만 일찍 나가면 되는데 왜 그게 그리 어려운 건지. 결국 사람이란 습관이란 말이 맞는가 보다. 책에 책갈피를 끼워두고 핸드폰을 꺼낸다. 바탕화면 글귀에 적는다. '약속시간 15분전 나는 약속장소에 있는다.'라고.
 

둘, 문자를 써라. 난 귀차니즘의 여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온몸에 귀차니즘을 덕지덕지 붙이고 다닌다. 귀찮아서 이 것도 안하고, 귀찮아서 저 것도 안 한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미루는 게 쌓여서 1년치다. 개중에는 온 문자를 대충 보고 있다 써야지 라며 답변을 미루는 습관도 있다. 그러나 결국 인생사 의사소통이 길인 것을. 나는 스스로 귀찮음에 빠져 내 주위의 사람을 멀리멀리 떨어뜨리고 있었다. 사소한 문자 하나로 이어지는 정. 비록 몇 자 텍스트에 지나지 않지만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인간관계의 폭과 질을 넓히는 큰 한 발짝임을 새삼 느꼈다. 
 

그 밖에도 너무 많은 알짜배기 정보들이 있다. 아마 말미에서 그가 밝혔듯 이 작은 책 하나에 다 담지 못한 정보들은 그의 뚝심카페에도 소복이 쌓여있겠지. 지금 이 순간 가볼까 하다 나중에 가보지 하며 다시 미루는 내 모습이 보인다. 생각 후 행동하라? 아니다. 물론 무대뽀 행동만이 전부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생각만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다. 김영식 회장을 지금의 자리까지 끌어올린 건 그의 생각이 아닌 그의 발이었다. 그의 입이었고, 그의 손이었다. 참 부지런한 사람, 참 곧은 사람, 배울 게 많은 사람. 그가 바로 천호식품의 오너 김영식이다. 


지금이 힘들어 주저앉는 그대와 나, 그저 적당히 살면 되지 라며 주저앉는 그대와 나에게 진정 필요한 책이다. 10미터 더 뛰기가 힘들면 1미터라도 뛰어보자. 작심삼일도 좋다. 삼 일이라도 해라. 그 삼 일이 모이고, 1미터가 모여 100일, 1000일이 되고, 42.195km의 마라톤 코스가 된다. 그저 그런 줄 알고 만나지도 않을 법 했던 이 책이 나에게 새로운 멘토가 되어주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마 당신에게도 그러리라. 내가 얻은 그 아하! 를 부디 당신도 심장으로 느껴보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알렉산더 페히만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사람이 평균 70살을 산다고 가정하고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다고 계산해도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의 수는 채 3만권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 세상에는 그 보다 많은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다. 훑어보기든 줄거리 읽기든 약식으로 읽는 것을 포함하면 더 많은 책을 읽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혹자는 몇만 권이 뉘 집 개 이름이냐며 노려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책이란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았으며, 기술이 발달하고 지식인이 늘어난 지금은 하루에도 수백 권의 신작이 쏟아져 나온다.
 

그 많은 책들 중 불과 50년이 지난 후 계속 읽히고 있는 책은 얼마나 될까. 결국 사람의 손을 통해 나온 대부분 책들은 잊혀진 책들의 도서관에 들어간다. 잊혀진 책들의 도서관? 지금부터 말하려는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의 한 분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없이 많은 책보다 더 많은 양의 기록과 사상과 인물을 담고 있는 특.별.한 도서관이다.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책 겉장을 넘기자마자 누군가 우리를 맞이한다. 아하, 이 도서관이 말단 사서다. 우리를 위해 특별히 안내인으로서 도서관의 곳곳을 관람시켜주신단다. 아직도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분들을 위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이 여기 있다. "실날같은 존재의 개연성만 있어도 그 책은 얼마든지 실재한다고 볼 수 있다." 자, 이제 도서관 말단 사서를 따라 실날 같은 개연성을 타고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에 안착한 이야기들을 들어볼까.

 
아, 이미 이 도서관을 한 바퀴 돌아본 사람으로서 충고 한 마디를 하자면, 이 곳에 소개되는 저자들과 책들은 일반인들이 아는 사람이나 들어봄 직한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물음표)를 달고 다니는 내용들이다. 사람이란 아무래도 익숙한 것들에 환호하는 법. 그렇다고 졸지는 말 것. 그러면 그 안에 들어있는 정말 보석 같은 이야기를 놓칠 수 있으니.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명한 작가의 뒷이야기가 넘칠 듯 흘러나온다. 자신의 글에 만족하지 못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해 스스로 불태우는 작가, 원하는 작품이지만 불의의 사고로 잃어버린 작품들, 그저 이리저리 떠돌다 어디론가 실종되어버린 작품, 이야기가 생각난 순간 준비되지 못한 도구들 때문에 잊혀져 간 이야기, 죽음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머리에 넣어둔 채 떠나간 글들.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곁으로 채 오기도 전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곳곳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피할 수 없는 운명, 지하 서고> 이야기였다. 도서관의 가장 큰 서고 중 한 자리를 차지한 이 곳에는 남몰래 이야기를 쓴 사람들의 집필 혹은 집필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 아니, 서고라기 보단 한 번 내려가기조차 무시무시한 어두컴컴한 지하실. 어쩌면 우리가 때때로 자신만만하게 쓰고 그러나 소심하게 꾸깃거려 쓰레기통으로 내던지는 종이 쪼가리의 글들도 하나하나 모여 이 곳에 소복소복이 쌓여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제 이 도서관에 대해 슬슬 감이 오는가. 사실 도서관을 막 한 바퀴 돌아본 지금의 상태는 몽롱하다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겠다. 마치 상상의 꿈 속을 걸어온 것 같지만 분명 현실에 발 붙였던 이야기들. 이 도서관을 찾아가 보고 싶다는 괜한 욕심이 든다. 카프카의 따뜻한 이야기, 바이런의 별 것 아닐 회고록, 모래 속으로 사라진 카셈 이스마일의 도서관을. 오늘 밤 꿈에 도서관 말단 사서가 나를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괜한 상상을 하며 바통을 당신에게 넘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