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알렉산더 페히만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사람이 평균 70살을 산다고 가정하고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다고 계산해도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의 수는 채 3만권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 세상에는 그 보다 많은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다. 훑어보기든 줄거리 읽기든 약식으로 읽는 것을 포함하면 더 많은 책을 읽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혹자는 몇만 권이 뉘 집 개 이름이냐며 노려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책이란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았으며, 기술이 발달하고 지식인이 늘어난 지금은 하루에도 수백 권의 신작이 쏟아져 나온다.
 

그 많은 책들 중 불과 50년이 지난 후 계속 읽히고 있는 책은 얼마나 될까. 결국 사람의 손을 통해 나온 대부분 책들은 잊혀진 책들의 도서관에 들어간다. 잊혀진 책들의 도서관? 지금부터 말하려는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의 한 분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없이 많은 책보다 더 많은 양의 기록과 사상과 인물을 담고 있는 특.별.한 도서관이다.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책 겉장을 넘기자마자 누군가 우리를 맞이한다. 아하, 이 도서관이 말단 사서다. 우리를 위해 특별히 안내인으로서 도서관의 곳곳을 관람시켜주신단다. 아직도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분들을 위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이 여기 있다. "실날같은 존재의 개연성만 있어도 그 책은 얼마든지 실재한다고 볼 수 있다." 자, 이제 도서관 말단 사서를 따라 실날 같은 개연성을 타고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에 안착한 이야기들을 들어볼까.

 
아, 이미 이 도서관을 한 바퀴 돌아본 사람으로서 충고 한 마디를 하자면, 이 곳에 소개되는 저자들과 책들은 일반인들이 아는 사람이나 들어봄 직한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물음표)를 달고 다니는 내용들이다. 사람이란 아무래도 익숙한 것들에 환호하는 법. 그렇다고 졸지는 말 것. 그러면 그 안에 들어있는 정말 보석 같은 이야기를 놓칠 수 있으니.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명한 작가의 뒷이야기가 넘칠 듯 흘러나온다. 자신의 글에 만족하지 못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해 스스로 불태우는 작가, 원하는 작품이지만 불의의 사고로 잃어버린 작품들, 그저 이리저리 떠돌다 어디론가 실종되어버린 작품, 이야기가 생각난 순간 준비되지 못한 도구들 때문에 잊혀져 간 이야기, 죽음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머리에 넣어둔 채 떠나간 글들.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곁으로 채 오기도 전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곳곳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피할 수 없는 운명, 지하 서고> 이야기였다. 도서관의 가장 큰 서고 중 한 자리를 차지한 이 곳에는 남몰래 이야기를 쓴 사람들의 집필 혹은 집필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 아니, 서고라기 보단 한 번 내려가기조차 무시무시한 어두컴컴한 지하실. 어쩌면 우리가 때때로 자신만만하게 쓰고 그러나 소심하게 꾸깃거려 쓰레기통으로 내던지는 종이 쪼가리의 글들도 하나하나 모여 이 곳에 소복소복이 쌓여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제 이 도서관에 대해 슬슬 감이 오는가. 사실 도서관을 막 한 바퀴 돌아본 지금의 상태는 몽롱하다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겠다. 마치 상상의 꿈 속을 걸어온 것 같지만 분명 현실에 발 붙였던 이야기들. 이 도서관을 찾아가 보고 싶다는 괜한 욕심이 든다. 카프카의 따뜻한 이야기, 바이런의 별 것 아닐 회고록, 모래 속으로 사라진 카셈 이스마일의 도서관을. 오늘 밤 꿈에 도서관 말단 사서가 나를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괜한 상상을 하며 바통을 당신에게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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