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니의 바이올린
허닝 지음, 김은신 옮김 / 자유로운상상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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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었던가. 전쟁의 참사가 그대로 남은 골목에서 피아노를 치는 한 남자를 만났다. 유대인이란 이름 아래 고통 받아야 했던 한 인간의 고뇌를 잘 드러낸 영화 <피아니스트>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몇 년 후, 똑같이 유대인이란 이름 아래 고통 받아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났다.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중국 상하이로 먼 걸음을 한 리랜드 비센돌프다.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저자인 허닝은 본래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그런 그가 우연한 기회에 관심을 두게 된 상하이 유대인들. 그 작은 관심에서 이 책은 탄생했다. 모두가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고 유대인을 내친 시기에 그들을 받아들인 중국인들. 일본에게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살아나간 중국인과 유대인들의 용감한 이야기가 <멜라니의 바이올린>에 잘 녹아있다.
 

나치에 의해 딸을 잃은 비센돌프는 딸 멜라니가 자신의 생일 때 만들어준, 세상에 하나 뿐인 '멜라니의 바이올린'을 들고 중국 땅에 들어선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의 자존심을 버리고 적당히 일본인과 타협해 살아갈 수도 있던 그. 그러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줏대를 지키며 유대인의 자긍심을 지켜나간다. 
 

이야기는 그가 중국인 자매 루샤오넨, 루양 남매를 만나고 또 다른 바이올리니스트 정치인인 일본인 야스히로를 만나며 급류를 탄다. 반일인물로 찍혀 죽음 당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두 남매와 친일인물이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비센돌프는 서로를 가족과 같이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낸다. 한편 비센돌프의 바이올린을 노리며 어떻게든 그를 이기고자 하는 야스히로.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긍심, 가치에서도 그는 비센돌프를 이기지 못한다.
 

저자는 비센돌프와 야스히로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유대인에 대한 생각, 강압적이고 제멋대로인 일본인에 대한 비판들을. 권력을 가진 강자 앞에서 한 없이 약자일 수 밖에 없는 비센돌프지만, 어느 대화에서도 자신의 뜻을 낮추지 않는 그의 모습은 용감하다. 때론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믿고 몸소 표현할 수 있는 그의 모습에 진정한 용기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강자에 대한 약자의 소신 있는 용기는 비센돌프 뿐 아니라 루샤오넨, 루양 남매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가감 없이 보여진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 어떤 어려운 상황도 이겨내는 용기, 믿음이 있기에 당당할 수 있는 자세. 그런 그들의 용기가 다른 유대인과 중국인에게도 전해진 걸까. 처음엔 나약한 그들이지만 점차 대응할 용기를 얻는다. 결국 얻어낸 자유. 물론 전쟁의 종식은 그들의 힘이 아니었지만 힘든 시간을 이겨낸 그들의 의지와 용기가 있었기에 다시 웃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으리라.


주제도 소재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도 괜찮은 소설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2% 부족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래 들여다봤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곧바로 전해지지 않는 막연한 느낌. 감동은 있지만 절절하게 가슴까지 파고들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기억하리라, 암울한 시간을 이겨낸 그들의 용기를. 머리 속 어딘가에서 루양과 비센돌프가 함께 켜는 '그날'의 변주곡이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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