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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베르메르, 진주귀고리 소녀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의 화가. 소설일까 예술인문서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집어든 책은 얼핏 보기에 소설같지는 않고. 아, 베일로 덮인 베르메르를 제대로 만나보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아뿔싸!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한마디만 하자. 베르메르라는 화가, 그의 그림, 예술 세계가 궁금한 자들은 한 발 뒤로 빠지길. 이 책은 베르메르를 담았으나 그에 대한 책이 아니다. 또한 만만치도 않으니 각오 단단히 하고 따라올 것!
그렇다. <베르메르의 모자>(추수밭.2008)는 예술인문서가 아닌 역사경제인문서로 분류해야 마땅할 책이다. 굳이 분류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장르 나누기가 상당히 애매한 책이다. 시작은 베르메르의 그림으로 시작하고 그의 작품 이야기를 슬쩍 꺼내는 듯 하더니 채 두 페이지가 넘어가기 전 특정 사물에 초점을 맞춘다. 이내 주제는 하나의 사물에서 16,17세기 네덜란드, 유럽의 역사로 넘어가고 어느 새 배경은 중국이 된다. 아니 이런 버라이어티한 책이라니!
어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나 싶어 저자의 이력을 따라가본다. 아하. 중국 상하이로 유학을 하고, 계속 중국에 대해 연구했단다. 어쩐지 당대 중국의 사회, 경제 전반을 둘러보는 저자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더니.
그런데 왜 하필 중국과 교류한 그 많은 나라 중 네덜란드였을까. 그 시작은 소박하다. 20살 어느 여행길, 우연한 자전거 사고. 그리고 따뜻한 아주머니의 친절. 그 곳은 네덜란드 델프트였다. 베르메르가 그림을 그리고, 당시 네덜란드의 무역항이었던 어느 마을. 바로 그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자가 들려주는 베르메르의 그림이야기는 다섯 개. 거기에 더해 또 다른 네덜란드 화가 반 데르 부르흐의 작품 하나. 총 6개의 그림을 통해 16,17세기 사회상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마냥 쉽지만은 않지만 한 편의 이야기를 보듯 술술 이어진다.
그림 혹은 영화를 통해 사회상을 그려낸 책은 지금껏 수없이 대중에게 전해졌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 작가의 그림을 통해, 그 중 한 요소에서 시작해 점점 더 넓은 이야기를 펼치는 저자의 통찰은 상당히 날카롭고 자연스럽다. <델프트의 풍경>을 통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소개한다. <장교와 웃는 소녀>를 통해서는 장교의 펠트모자를 갖고 상플랭의 원주민 협력기를 그려낸다.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들에 독자들은 그저 빠져들 뿐이다.
그 뿐인가.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에서는 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중국자기의 여행을 따라가본다. <중국 화원의 풍경이 그려진 접시> 속 그림을 보며 담배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내기도 하고, <저울을 든 여인> 속 은화를 따라 은 거래의 속성을 보여준다.
때론 그런 그림 속 사물찾기와 그 것에서 파생되는 이야기 전개가 억지스럽다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소개하는 당시의 유럽, 중국 사회를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책에 푹 빠져든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에게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사정없이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과 국가 간 복잡한 관계는 읽는 이를 상당히 고생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한 번, 두 번 독파할 때마다 새롭게 들어오는 정보, 지식들에 분명 고마워할 나와 당신의 모습 또한 그려진다.
누군가는 "낚였다!"며 무릎을 칠 지 모른다. 그러나 다소의 머리 굴리기만 감당한다면 이 험난한 세상에 이런 낚임 정도야,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