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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갈릴레오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평점 :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세상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신기한 일, 무서운 일, 재미있는 일 등등. 그 중 우리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은 (물론 우리는 거의 다잖아! 라고 말하고 싶을 지 모르지만) 얼마나 될까. 아마 모르는 일이 더 많기에 미해결 사건도, 세상의 신비라며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야기도 끊이지 않는 건 아닐까.
여기 그 미해결 사건들의 숨겨진 비밀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남자가 있으니, 이름하여 데이도 대학 공학부 물리학과 제13연구실 조교수 유가와. 경시청에 근무하는 친구 구사나기의 부탁으로 멋지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 남자의 뒤를 따라다니다 보면 베일에 가린 비밀 몇 가지는 명쾌히 풀어져버린다. 때론 너무 간단해서 속상할 정도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두 번째 유가와 시리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분들, 바로 맞췄다. 국내에서는 먼저 선을 뵌 <용의자 X의 헌신>의 그 유가와가 맞다. 바로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은 다소 밋밋할 수 있음을 밝혀둔다. 일단 단편의 문제로 이야기가 간결해질 수 밖에 없다는 치명적 약점. 두 번째는 이 책이 천재 물리학자의 탄생을 알린 유가와 1탄이란 점. 그러나 그 탄생만으로도 이 책은 뿌듯하게 읽을 수 있으니 다소의 밋밋함은 용서해주지 않으려나.
어쨌거나 천재 물리학자의 불타는 호기심과 지적 능력은 그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타오르다, 옮겨붙다, 썩다, 폭발하다, 이탈하다의 총 5장으로 나뉜 이야기는 각각의 주제에 맞는 살인사건과 살인의 원리를 과학으로 찾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뭔가 배합이 맞지 않는 듯 보이는 구성, 그러나 전기공학과 졸업 후 관련 직종에서 일한 경험에서 나오는 지적 밑받침 덕분인지 이야기의 논지는 상당히 치밀하다.
스토리는 사실 뻔하다. 살인 사건, 경시청 구사나기 형사의 현장 방문, 유가와에게 일감 던져놓기, 혼자 이리저리 바쁜 유가와, 사건 해결 및 살인 원리 설명. 무슨 소설이 이렇게 조직화되어 설명이 가능하냐고 물어봐도 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설 특유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스피디한 속도감은 여전하고, 스토리도 흥미롭다.
다만 다소 간략화 된 이야기 흐름이 아쉽다면 아쉬울까. 특히 이 점은 앞에서 밝혔듯이 <용의자 X의 헌신>과 비교해서 더 그런 느낌을 준다. 뭔가 이야기가 진행될 듯 하다가 후다닥 끝나버리는 느낌일까.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편에 손 들어주고 싶은 강렬한 욕망. 어쩌면 소설보다 먼저 만난 일본드라마 <탐정 갈릴레오>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보니 이 책을 원작으로 일본에선 동명의 드라마를 제작한바 있다. 책만으로는 유가와의 이미지가 상상되지 않는 분들은 멋진 천재 물리학자를 보기 위해서라도 필히 보시길. (다만 드라마에서는 극적인 요소를 위해 구사나기 대신 여형사를 선택했다.)
그래서 결국은 복합적인 여러 요소로 인해 히가시노 읽기의 즐거움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는 개인적인 후일담. 역시 1탄부터 차례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교훈을 주는 책. 더불어 역시 영상보단 활자를 먼저 봐야 활자의 재미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책은? 역시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