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죽음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8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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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의 복수, 권선징악 스토리는 모두 버려라!

<편집된 죽음>(문학동네.2009)에서 독자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치밀한 범죄를 보게 되고, 예상과 다르게 끝나는 결말에 경악할 것이다.

 

책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소설가 니콜라와 그의 편집자 에드워드이다. 어린 시절부터 수십년을 니콜라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온 에드워드. 사건의 시발점은 니콜라의 콩쿠르 상 수상이었다. 콩쿠르 상을 수상한 소설에서 에드워드는 어린 시절 첫사랑과 관련된 비밀을 알게되고, 결국 치밀한 복수를 시작하게 된다.

 

복수의 방법은 간단하되 치밀했다. 콩쿠르 상을 수상한 소설을 표절시비에 휩싸이게 하는 것. 이를 위해 그는 완벽한 원본 책을 만들기 시작한다. 목적없이 모아놓은 몇 가지 퍼즐이 한 귀씩 맞아떨어져가면서 니콜라의 목을 죄는 퍼즐은 완성되어갔다. 그리고 세상에 터지는 순간, 니콜라를 향한 에드워드의 복수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한 사람이 몇 십년간 갈아온 복수의 칼날은 얼마나 정교한지. 이 책의 복수는 피비린내가 나지도, 잔인하지도 않다. 복수의 도구는 칼, 총과 같은 무기가 아니다. 기껏 날에 비어 핏방울이나 보게 할 책 한 권. 그러나 책이 몰고온 복수의 날은 여느 칼보다 날카롭고 여느 총보다 강력하다. 서서히 사람을 말려 죽여가는 옥죔. 에드워드의 복수는 성공을 넘어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갈기갈기 찢어 발겨버린 한 권의 책. 혹자는 에드워드의 복수를 보며 잔인하다고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복수를 할 정도로 오랜 시간 내제된 에드워드의 슬픔과 고통! 단지 그 기분을 되돌려주기 위한 혼자만의 애처로운 연극을 제3자인 우리가 비판할 수 있는 것일까.

 

분명 에드워드는 의도적으로 한 사람의 삶을 죽음에 이르도록 교묘하게 편집해냈다. 그러나 편집인으로서의 작업이 죽음까지였는지, 단지 고통의 감정만을 위한 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에드워드에 대한 니콜라의 교만했던 태도가 의식적이었는지 무의식적이었는지 알 수 없는 바와 마친가지로.

 

그 판단은 이제 당신의 몫이다. 에드워드와 니콜라에게 유죄 혹은 무죄 판결을 내리는 즐거움 말이다. 소설 속에서는 니콜라는 희생자로, 에드워드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당신 생각이 다르다면 그것도 정답이다. 생각보다 가볍게 읽었지만 다 읽은 후에는 죄와 사람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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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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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남에 따라, 리사는 공허함과 만족감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샘이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돌아오면 리사의 세상도 안정을 되찾고 만족스러워졌다. 그러나 샘이 조금만 일에 치중하는 듯이 보이면, 금방 실망했다.] 10p

이야기에 등장하는 리사는 멋진 여성이다. 그러나 샘과의 사랑이 지속되면서 그녀는 자기를 잃어간다. 이건 아닌데를 속으로 외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녀에게 닥친 이별. 그녀는 슬픔으로 괴로워한다.

 

애써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겠지만 많은 여자들은 리사와 같은 일을 겪으며 힘들어한다. 왜, 똑똑한 여자들이 남자에게 휘둘리는것일까? 저자는 '혼자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관계 맺기와 혼자 존재하기라는 양날의 욕구를 가진 존재이다. 즉 마음 속 한켠에 분명히 혼자 있고 싶어하고, 그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특히 여자들은 혼자인 상태를 피하려고 한다. 왜? 사회적인 학습에 의해 혼자인 상태는 남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실패자의 이미지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선입견을 깨고 당당한 혼자가 되어 잘 살아가기를 격려하는 책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솔로 예찬을 하는 건 아니다. 저자가 여자들에게 홀로 일어서기를 주장하는 이유는 '혼자임을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두려움 때문에 정체되어 있거나 자신을 소외시키거나 파괴시키지 않는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독자들은 혼자라는 단어의 의미에서부터 시작해 이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어 진짜 나를 발견했던 어린 시절을 탐험하고, 엄마, 아빠, 친구 등과의 관계를 되짚어볼 수도 있다. 이쯤되면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여기서부턴 본격적으로 혼자되기 연습을 위한 조언들이 기다리고 있다.

 

중요한 건 '고독을 즐기는 일'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고독이라 하면 외로움, 고립이란 단어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다르다. '고립과 고독은 양극과 같다. 고립의 장소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지만, 고독의 장소는 모든 종류의 경험이 담길 수 있는 가능성의공간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고독은 자기의 성장을 위한 바탕이 된다. 게다가 이 고독이란 건 그저 홀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취미생활을 해도 좋고, 날 맑은 날 방 청소를 해도 좋다. 거창하지 않지만 자신만을 위한 시간, 그게 바로 고독이다.

 

많은 여성들이 독립적으로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여전히 마음 속 한켠에 불행을 안고 있다. 그런 그녀들에게 진짜 행복을 보여주고 다가갈 수 있는 힘을 북돋아주는 책이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 속에서 자기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라면 한번쯤 만나보길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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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눈
장석남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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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경험한 만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책이라도 읽는 나이에 따라 천차만별의 감상이 나올 수 있다. 일반 소설들도 그러한데 시는 오죽할까. 그 자체로서도 이미 수십가지의 해석이 가능한 열려있는 글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넓은 독서를 가능케하는 '경험으로 읽기'가 독서에 독이 될 때도 있다. <젖은 눈>을 읽을 때의 나와 같이 경험 부족자의 독서에 있어서는 말이다.

 

살가운 해석도 없다. 그저 독자에게 툭 하니 던져놓은 언어의 집합만이 마치 풀지못하는 수학 공식마냥 내 앞에 던져져 있다. 집중하려 소리내서 읽어봐도 단어는 마음 속이 아닌 허공을 떠돌 뿐이다. 그렇게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어두었다. 그리고 비 오는 토요일, 홀로 방에 앉아있다 구석에 박힌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내 고독에 친구가 되어주지 않으련? 이란 속말과 함께.

 

여전히 아리송하다. 아니, 아리송은 조금 알것 같을 때 쓰는 말이지... 모호하기 그지없다. 장석남이란 시인에 대해 알지 못하는 무지, 그가 살아온 시대를 공유하지 못하는 무지, 그와 같은 나이대의 공감조차 갖지못한 무지, 무지, 무지. 그래서 결국 난 내 마음에 그의 언어들을 쑤셔넣는다.

 

그러다 마음이 이거 괜찮네라며 집어준 구절 하나가 눈에 박힌다.

[늦은 밤에 뭘 생각하다가도 답답해지면 제일로 가볼 만한 곳은 역시 부엌일밖에 달리 없지.

... 내가 빠져나오면 다시 사물을 정리하는 부엌의 공기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아도 또 시 같고, 공기 속의 그릇들은 내 방의 책들보다 더 고요히 명징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읽다가 먼데 보는 오 얄팍한 은색 시집 같고.

부엌 中]

어려운 말, 내가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만 주르륵인가 싶더니 이런 편안한 시도 한켠에 숨어있다. 아, 이 사람 모를 말만 풀어놓는 영감이 아니구나 싶으니 이제부터 좀 더 많은 단어가 마음으로 행진하기 시작한다.

 

이제보니 장석남이란 이 시인 참 소박한 아저씨같은 인상이다.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의 이미지가 아니다. 부엌을 저리 친근하게 그려내는 걸 보니 그러하고, 인생을 한낱 오동잎 너울거리는 모습으로 비유하는 걸 보니 그렇다.

[그렇지, 밤비 후득이는

오동잎이

우리 생이지

후득여도 너울대는 게

그게 생이야

소주 생각 간절한 밤비 속

우리 생이야

밤비 中]

 

그런데 이 소박한 분, 인생의 단맛 쓴맛 어느정도 쏠쏠히 맛보셨나보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 속에는 고독이 가득하다. 그런데 슬퍼 몸부림치는 그런 고독이 아니다. 인생에 이런 맛도 있어야지 싶은 유유자적한 고독이다. 외로움도 내 친구려니 하는 신선같은 태도랄까. 그래서 그의 글들은 외롭지만 슬프지 않다.

[사람들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산을 보곤 하는 것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저 빈 잔디밭을 굴러가는 비닐봉지같이

비닐봉지를 밀고 가는 바람같이 외로운 줄은 알았어도

알았어도

다시 외로운,

새로 모종한 들깨처럼 풀없이 흔들리는

외로운 삶

자화상 中]

 

그리 지내온 삶이나 적적하게 옮겨적어놨나 싶었는데 어느 새 그의 글은 지난 사랑을 추억하는 장이 되어 있다. 문학청년이었을 그 시절의 풋풋한 소심함이 가득 담긴 시구를 보니 웃음이 풋 터져나온다.

[내 작은 열예닐곱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이제 겨우 막 첫 꽃 피는 오이넝쿨만한 여학생에게 마음의 닷 마지기 땅을 빼앗기어 허둥거리며 다닌 적이 있었다.

멧새 앉았다 날아간 나뭇가지같이 中]

 

이 얼마나 소박하고 솔직하며 정직한 표현인지. 왠지 이 시인은 지금도 그 고운 표현 낳은 마음 그대로 지니고 있을 듯 싶었다. 그의 이런 고운 말장난은 시집 이 곳 저 곳에서 빛을 발하는데, 어딘가 메모해뒀다 아끼는 사람들 편지에 한 구절씩 넣어 보내고 싶게 만든다.

[파래진 창 모퉁이에

만간 손톱달이

갸글갸글한 숨결에 씻기고 있다

낯선 방에서 中]

 

시집이지만 마치 한 편의 조용한 수필집을 읽은 기분으로, 서툰 감상을 마친다. 책은 덮었는데 아직도 한참을 더 읽어야 할 듯한 기분. 언젠가 내가 그의 나이만큼 찰 때, 나의 경험이 지금보다 풍요로워질 때 다시 만나면 그 아쉬움이 좀 덜어질까. 그 땐 내 눈가도 촉촉히 젖어들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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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건방진 우리말 달인 - 달인편 건방진 우리말 달인 시리즈 2
엄민용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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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리뷰 쓰고 얼굴이 새빨개지게 챙피했던 기억이 있다. 리뷰쓰면서 사용한 단어 하나가 어법에 맞지 않았던 걸 누군가 날카롭게 지적한 것. 좋게 말해주고, 나 또한 좋게 응답해서 넘어갔지만 그 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어딘가로 쏙 숨고 싶다. 그로부터 몇 일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직격탄을 받았다. 이번에도 잘못 사용한 단어 덕분. 쓸 때마다 국어 사전 옆에 두고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매번 이러다간 얼굴이 딸기밭이 되겠다 싶던 어느 날 이 책을 만났다.

 

<더 건방진 우리말 달인>(다산초당.2009)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말 실용서다. 그러나 실용서라고 하기엔 쫌 재밌고, 재미로 읽기엔 얻는 게 쫌 많다. 일단 대부분의 페이지를 '우리말 제대로 쓰기'에 할애했다. 잘못 쓰고 있는 말, 쓰면 안 되는 말 등. 그러나 단순히 잘못된 말을 고치고 제대로 된 말을 알려준다면 이 책의 매력은 시중에 나온 다른 책과 다르지 않았을 거다.

 

요즘 시대에 맞는 이슈들과 하나의 단어를 조합해 사람들의 흥미를 잡아내는 건 기본, 내용 중간에 잘 틀리는 단어들을 삽입해 잊지 않고 챙겨주는 건 센스다. 그러나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한 번 보는 것만으론 너무 어려운 게 우리말이니. 차라리 모를 땐 맘이라도 편했지, 알고 나니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이 책의 세 번째 매력, 보고 보고 또 보고. 부담없이 필요할 때 슥 찾아볼 수 있는 가벼운 (들은 건 묵직하지만) 책이란 점이다.

 

그러나 이 건방진 우달이가 소개해 준 여러 내용들보다 직격으로 도움이 된 장이 있었으니, '3장. 더 이상 빨간 줄은 없다' 부분이다. 특히 띄어쓰기 부분은 알아도 알아도 헷갈리고 어려워 에라, 모르겠다 싶은 경우가 종종 있는 부분이라 눈이 번쩍!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간략하지만 뼈가되는 우달이의 체크 포인트가 담긴 4장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한 번 본다고 우꽝이(우리말 꽝)가 우달이(우리말 달인)가 될 수야 없는 법. 아무리 끝내주는 사람이 좋은 책을 썼다고 해서 그걸 읽는 것만으로 (그 것도 달랑 한번) 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달이와 같이 읽을수록, 쓸수록 느는 게 말이고 글이라는 걸 믿는다. 그러니 머리에 들어가든 안들어가든 오늘도 책 부여잡고 읽다가, 흰 화면 띄워놓고 쓰고 있는 것.

 

다행히 이 책은 재미있다. 읽다보면 푸훗, 웃음도 새어나온다. 학교에서 지겹도록 한 공부, 따로 돈 주고 책 사가면서까지 해야하나하지 말고 일단 집어들어 읽다보면 웃는 새 자기도 모르게 늘어난 우리말 실력에 놀라게 될지도. 표지의 건방지게 팔짱 낀 개의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흥! 나도 우리말 달인이 될 수 있다고!" 남 얘기가 아니다. 일단 시작이나 해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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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섹스 - 일하는 뇌와 사랑하는 뇌의 남녀 차이
앤 무어.데이비드 제슬 지음, 곽윤정 옮김 / 북스넛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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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무스 히가무스, 남성은 폴리가무스 / 히가무스 호가무스, 여성은 모노가무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란 사람이 아산화질소를 마시고 기록한 말이란다. 도통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 없다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해석을 달자면. 남자는 일부다처제를 좋아하고 여자는 일부일처제를 좋아한다정도 되겠다. 남녀 평등을 부르짖는 시대에 이게 왠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그러나 어쩌랴. 이게 타고난 남녀의 차이인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남녀 평등.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불평등은 장난없다. 그런가하면 요새는 역불평등도 문제다. 여자들 필요할 때만 남녀평등을 부르짖는다나 뭐라나. 어쨌거나 참 예민한 단어다. 그런데 안그래도 예민한 이 단어를 슬슬 건드리는 책이 등장했으니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은 <브레인 섹스>(2009.북스넛). 굳이 해석하자면 성에 따른 뇌 차이를 다룬 책이건만, '섹스'란 단어에 또 솔깃한 남정네들, 훠이훠이.

 

이 책의 요지는 '남녀차이는 뇌에 기인하며, 애초에 서로 다르게 태어나는 것'이다. 아니,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태어나기 전에 한 개체로 구성되는 순간부터 서로 다른 존재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사실 요즘 대세는, '남녀는 같게 태어나고 사회적인 인식때문에 남과 여가 구분되며 그로 인해 남녀 불평등이 생겼다'이다. 그런 와중에 애초에 다르게 태어났다는 주장만으로도 허 참, 인데 이 책 아주 제대로 뒤엎을 생각인가보다. 조목조목 남녀의 차이를 밝혀내고 있다.

 

어떻게 밝혀내나 들여다보니 일단 엄마의 자궁 속에서 뇌가 생성되는 멀고 먼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하여 호르몬 작용으로 인해 여자의 뇌, 남자의 뇌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 다음엔? 이제 태어나야지. 여자든 남자든.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미 문제는 발생한다. 몸은 여자외되 머리는 남자이거나, 몸은 남자이되 머리는 여자인 경우가 심심찮게 나온다는 것. 어쨌거나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유아기, 초등기, 사춘기를 거쳐서 어른이 되어가고 점점 남녀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데... 여기서 이 책의 주장, 그게 사회화가 아니라 다 지들이 타고난 거 따라가는거라니까!

 

이어서 좀 뻔한 남녀 뇌의 차이: 숫자, 시각, 경쟁 등에 탁월한 남자 vs 언어, 청각, 화합에 익숙한 여성을 비교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야기는 사랑과 일로. 아마 예상했겠지만 타고난 차이에 의해 여성은 어찌어찌해도 다시 모성애와 관계 지향 덕분에 집과 친해지고, 남자는 공격성과 경쟁심, 명예, 돈에 대한 추구로 인해 바깥을 전전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까지 보다보면 읽던 여자들 화 좀 날법도 하다. 그래서 남자가 득세하는 게 옳다는거야 뭐야!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이 책의 저자, 그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우리는 타고난 차이를 가지고 있고 그걸 굳이 극복하겠다고 용을 쓰느니 자기가 잘 하는 걸로 잘 살아보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 뿐. 뭣도 모르고 덤비며 살면서 에잉, 이건 아니잖아라며 속 끓지 말라는 조언.

 

적당히 써내려왔지만 사실 이 책, 다양한 사례로 흥미를 자아내고, 연구자 말, 연구내용 인용 등으로 전문성까지 든든히 챙기고 있다. 남녀 차이에 대해 속 끓던 사람이라면 제대로 공부하는 셈 치고 즐겁게 읽어보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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