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스탄불 - 도시 그리고 추억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한 사람의 생을 돌이켜 쓴다는 것, 그리고 읽는다는 행위는 쓰는 자, 읽는 자에게 모두 녹록치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읽는 자에 있어 그 상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 도시를 대표할 수 있는 작가라면 매혹적임에 더해 부담감 또한 만만치 않을지 모른다.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 처음만나는 오르한 파묵은 그렇게 다가왔다.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스탄불>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 뿐 아니라 자신을 만들어온 도시 이스탄불. 그 도시를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까지를 어우른다. 자칫 산만해질 법도 하나, 오르한과 이스탄불을 하나로 통과시키는 마법과도 같은 선이 있었으니, 구태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비애, 라는 것이다.
슬픔 그러나 그와는 다른, 아련하게 사랑스러우면서 회색빛의, 서양과 동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스라한 느낌. 오르한은 500여페이지의 두꺼운 책 속에서 끊임없이 비애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건 오랜 세월을 살아낸 이스탄불의 색이었고, 그 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자신에게 내려앉은 삶의 감각이었다.
그러나 비애는 슬프지 않다. 회색빛 사진 속이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듯이 비애가 전반에 깔린 그의 글이지만 때론 유쾌하고 때론 달달한 맛을 낸다. 어쩌면 책을 읽는 내내 그 비애란 녀석이 내 안에 들어와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앉아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책을 덮은 지금 표지의 우울할법한 그림이 지금은 아, 애잔하고 일상적이고 평화로워보인다.
그의 소설은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시계바늘 위에 앉아 세상을 돌아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천천히 몇십년전의 시대로 돌아가 그의 어린 시절을 훔쳐보고, 더 오래전으로 돌아가 이스탄불에 발을 들여놓은 외국인들을 따라다닌다. 어느 때도 유쾌하고 발랄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글 속에서는 잔잔히 웃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묵 아파트를 뛰어다니는 어린 시절 오르한의 모습에서 때묻지 않은 순수한 웃음이 비춰진다.
아무래도 그의 비애에 너무 빠져들었나보다. 책을 읽는 내내 몽롱했던 상태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다. 지금도 회색빛 뒷골목을 따라 보스포루스 강변을 따라 걷는 느낌. 그의 이야기는 어려운 중독과 같다.
그가 성장하며 자신을 키워나가고 (아니, 이스탄불이 그를 키워낸건 아닐까) 사랑을 하고 방황을 하고. 아, 어쩌면 우리는 이스탄불이란 도시를, 그 도시를 써내려간 작가를 잃을뻔 했다. 그러나 마지막 어머니와의 대화를 끝으로 그는 자신의 이야기첩을 닫는다. 그리고 새롭게 자신의 이야기책을 만들어나갔고, 그렇게 우린 또 하나의 이스탄불을 만났다.
언젠가 이스탄불을 여행하게 된다면, 보스포루스 강변이 보이는 창가가 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다시 꺼내보고 싶은 책이다. 왠지 회색빛 썬글라스를 꼭 챙겨가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