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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것은 소위 정적인 활동이다. 책 한 권만 있다면 서너 시간을 너끈히 보낼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읽다'가 '읽어준다'는 행위로 탈바꿈하는 순간 관계가 끼어든다. 읽어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 양자간의 관계성이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바람직하게도,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도 치닫곤 한다. <책 읽어주는 여자> 에서 나타내는 관계는 위험하다. 애써 외면하지만 책을 매개로 한 행위는 은밀한 성의 세계까지를 탐색한다.
주인공 마리-콩스탕스 G는 남편은 있고 아기는 없는 무료한 부인이다. 기차게 멋진 목소리를 이용하기 위해 어느 날 신문에 광고를 낸다. '젊은 여성. 가정 방문하여 책을 읽어드립니다. 문학 서적, 문헌, 기타 서적.' 광고회사 사내도, 노스승 롤랑 소라도 무언가 걱정한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고객이 생긴다. 장애인 소년, 공산주의 노부인, 사장, 어린 소녀, 늙은 판사. 하나같이 마리의 목소리에 감탄한다. 왠지 중세시대에나 어울릴법한 '책 읽어주는 여자'는 호평이다. 그러나 한 번, 두 번의 만남이 지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분명 책은 읽고 있지만 마리의 행동은 책 읽기 그 이상이다.
행동의 변질이 극에 치닫는 순간 결국 마리는 실업자가 될 것임을 확신하며 문을 닫고 나온다. 독자인 나는 마리의 행동에 박수를 쳐야 할까,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길 기다려야 할까.
프랑스 소설가 레몽 장의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 읽은 후의 느낌은 한 마디로 프랑스적이다. 모호하며 위험한 느낌. 그 무엇보다 도덕적인 행위일 책읽기가 어떻게 이리 요염한 느낌이 된 것일까. 저자는 마리의 입을 빌려 그 근거를 슬쩍 제시한다.
'이 활동은 소리 없이 침묵 속에 이루어지는 것을 크게 소리 내어 읽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잘못이 있다면 있는 것이다.' -P.207
'책 읽어주는 여자는 '읽어'야 한다. 남이 요구하는 것을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 그 요구가 지나친 것만 아니기를 바라지만. -p.242
문제는 책을 읽어주는,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버린 관계였다. 텍스트가 목소리로 바뀌어 공기 속에서 울림으로써 글은 새로 태어난다. 마리가 곧잘 글을 읽으며 '나는 정말이지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고 말하는 것은 이를 반영한다. 더 이상 모파상도, 보들레르도, 마르크스도 없다. 마리의 목소리뿐이다.
독서만큼 은밀한 개인적 행위가 또 어디 있을까! 겉으론 얌전히 텍스트만을 읽어내려 가지만 그 속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우물. '책'과 '목소리'가 어우러진 <책 읽어주는 여자>는 종종 직접 목소리를 내어 읽어본다면 그 맛이 더욱 아스라하게 느껴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