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집 - 우리 시대 대표 여성작가 12인 단편 작품집
박완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몸이 살아가고 영혼이 머물다 가는 ‘집’.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하루 곤히 일하고 와서 편히 쉴 안식처 정도의 의미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지나온 삶의 흔적이요, 아픔의 응어리였다. 그 설운 구절구절을 12명의 여성 작가가 그려냈다.

 

<소설가의 집>(중앙북스.2008)은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출신 작가들이 말하는 ‘집 이야기’다. 집이란 소재에 더 각별할 여성들의 이야기란 점에서 특별하다. 집이란 큰 주제를 가졌지만 색이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이기에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12인의 작품이라고 소개되었지만 실상 이야기로 만나기 전 알고 있던 작가는 둘 뿐이었다. 첫 번째 박완서, 마지막 김비. 무려 10인의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될 기대를 안고 책장을 펼쳤다.

 

아뿔싸. 너무 만만히 봤던 것일까. 한 시대와 가족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들이었다. 이야기에 몰입되면서도 쉬이 책장을 넘어가지 않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아픔이란 언제나 가볍지 않은 법이다.

 

박완서의 <땅집에서 살아요>에서는 서울로 시집 온 시골처녀의 끊임없는 땅집 타령이 이어진다. 아스팔트로 뒤범벅된 도심 한 가운데에 그녀가 밟을 뜨신 땅은 파헤쳐진 땅뿐이다. 이런 식의 결말 없는 허무한 마무리는 책 전반의 분위기를 감싸고 있다. 결과적으로 오랜 인연을 배신하며 얻은 새로운 삶이지만 축복받지 못하며 끝나는 송은일의 <당신의 혼잣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울한 분위기만이 책을 아우르진 않는다. 신현수의 <봄꽃은 다시 피고>에서는 아버지 사후에야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애꿎은 욕심을 꺾는 한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섬뜩했던 인형이 집이 아이가 우는 마당집으로 변하면서 비로소 사람의 집으로 변한다. 우애령의 <와인 바에서>에서도 잃어버린 삶을 기억으로나마 되찾는 자매의 모습에서 한 걸음 내딛는 희망을 본다.

 

집이란 그런 게 아닐까. 아픔도 기쁨도, 체념도 희망도 어우러진 장소. 때론 물질적인 장소로, 때론 관념적인 정신체계로도 존재하는 어떤 것. 한 마디 말로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무엇 말이다.

 

그렇기에 그리도 다양한 입담을 자랑했는가 보다. 이미 아픈 이야기들을 듣고 난 후라 ‘집이란 그래도 희망 넘치는 마지막 안식처다’라는 뻔한 말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정말 안타깝도록 애달픈 이야기도 있었기에.

 

힘겹게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엔 따뜻한 분홍빛 표지만큼이나 마음 한 구석이 훈훈하게 덥혀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마 집이란, 엄마란, 가족이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보며 다시 마음속으로 곱씹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