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영화관에서 영화 예고편으로 <은교>를 먼저 만났었다. 파격적인 영화 예고편은 당연히 시선을 끌었고 선생님과 제자라는 관계는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리고 곧 박범신의 <은교>를 영화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위대한 시인 이적요가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되었고, 이적요의 유언대로 죽음 일 년 후 공개하기로 했던 노트를 Q변호사가 펼쳐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포문을 열고 시작되었다. Q변호사가 읽은 이적요의 노트는 충격적이었다. 이적요의 고백을 담은 것이었는데,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며 이적요의 제자였던 서지우를 그가 죽였다는 고백에서부터 손녀뻘 되는 열일곱 소녀 한은교를 사랑했다는 사실까지 담겨있었던 것이다. 노트의 공개여부를 두고 Q변호사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와중에 은교를 만나게 되었고, 은교에게도 서지우가 남긴 기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전개되었다.

<은교>는 처음 Q변호사가 이적요 시인의 노트를 열어본 것부터 시작해서 [시인의 노트]와 [서지우의 일기], 그리고 중간에서 이야기를 연결하고 진행시켜 나가는 [Q변호사]가 번갈아가며 작은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적요와 서지우와 은교가 어떻게 서로의 삶에 들어가 일부분 혹은 그 이상을 차지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지,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의심과 질투와 갈망과 사랑, 존경과 배신과 실망과 증오 등의 수많은 감정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과정을 느끼고 지켜볼 수 있었다. 이적요에게 있어서 은교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만큼 은교는 충격이고 신선함이었다. Q변호사의 해설에 의하면 은교는 그저 보통의 소녀일 뿐인데 무엇이 이적요의 마음에 쿵 부딪친 것일까. 결국 은교를 향한 이적요의 마음은 그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 이야기가 때로는 가슴이 절절하고 아프게도 다가왔다. 은교와 서지우를 지켜보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이적요를 보면서, 암벽을 타고 내려가 은교의 손거울을 주워오던 이적요를 보면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가는 활활 타오르는 불을 지켜보면서 무섭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으며, 어렵고 혼란스러웠다. 선생님이 벌이고자 한 행동을 자동차 수리점에 가 확인한 서지우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나도 울컥하고 말았다. 책을 덮고도 한참이나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고 시원한 느낌이 없이 뭔가가 끈끈하게 남아있는 것 같았다.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배우들이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을 어떻게 묘사할지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