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하는 날
최인석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점점 쌀쌀해져만 가는 요즘, 봄날 같은 상큼하고 달달한 로맨스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런 바람을 안고 이 책 <연애, 하는 날>을 골랐다. 띠지에 쓰여 있는 ‘단 한 번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라는 말에 왠지 조금은 주저하게 되었지만, ‘모든 것을 잃었어도 후회 없는 사랑’은 어떤 것일지 궁금한 마음에 책 읽기를 계속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애초에 기대하고 바랐던 상큼함과 달달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종류의 사랑 이야기를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는 그리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뭔가에 빨려들 듯 이 책 속에 흡수되어갔다. <연애, 하는 날>에는 몇 커플이 등장한다. 커플이라고 해야 하나, 부부라고 해야 하나. 불륜이라고 해야 하나, 바람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나.


어린 시절 한 동네 기름장수 아주머니의 딸이었던 수진의 결혼식에 간 장우는 활짝 웃는 수진의 얼굴을 보고는 그녀를 갖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졌다. 가지고 싶은 것은 그게 뭐든 가질 수 있고, 버리고 싶은 것 역시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장우는 힘 있는 남자였다. 그렇게 해서 가진 수진이 점점 아내보다 더 아내 같아졌다. 그녀를 위해 오피스텔을 마련하고, 한 번에 몇 백만 원씩을 가볍게 건넸다. 그러다 수진의 입에서 아파트를 사달라는 말이 나왔고, 장우의 매뉴얼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결혼식에서의 만남을 인연으로 장우의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된 수진은 장우가 호텔로 부르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을 거절할 용기도, 마음도 수진에게는 없었다. 심지어 바로 이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수진은. 장우와 함께 있을 때면 그녀는 집에 있는 아이들도, 남편도 가슴 속 한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처남과 함께 여자들과 어울리고, 심지어 잠도 자고. 그럴 수 있는 남자가 이 책 속에 있었다. 그리고 처남은 장우에게 붙어 기생한다. 아내의 식구들 모두 장우에게 기대 산다. 장우에게 그들은 참 귀찮고 거치적거리는 존재들이다. 장우에게 그들은 식구의 개념이 아니라 언제든 내칠 수 있는 집안 어느 가구 쯤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의 욕망이 무서웠다. 이 책 속에 온전한 사랑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심각하게 비틀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진과 그녀의 남편 상곤, 장우와 장우의 아내 서영, 장우의 처남 대일, 그리고 연숙. 이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욕망과 돈으로 어지럽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이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너무 슬프고 무섭다는 느낌이 앞섰다. 참 아픈 이야기였다. 어떻게 보면 우리 현실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도 같아 책을 읽은 후에도 뭔가 찜찜함이 남는 그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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