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무슨 고집에선지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읽지 않으려고 했다. 영화로 제작되고 개봉했음을 알고도 영화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도가니> 이야기에 대해서 아는 것은 대충의 줄거리라고도 말할 수 없는 작은 것이었음에도 이상하게 읽고도 보고도 싶지 않았다. 영화가 이슈가 되고 도가니 뉴스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도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참 이상한 고집이었다. 그러다 또 아무 이유 없이 이끌리듯 친구들과 영화를 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점에 들러 <도가니>를 샀다.


유일하게 <무진기행>에서 접했던 ‘무진’이 이 책의 배경이었다. 무진시(霧津市)에 위치하고 있는 청각장애인 학교 ‘자애학원’. 아내의 주선 때문에 우격다짐으로 자애학원의 기간제 교사를 맡게 된 강인호는 무진에 도착하면서부터 불길함을 느낀다. 청각장애아가 기차에 치여 죽어도 사건은 학교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고, 화장실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애정이 없어 보이고, 학생들을 뉘우치게 한답시고 폭력들을 아무렇지 않게 행사하고, 심지어 교장과 무진경찰서의 형사 사이에서는 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영리한 아이 연두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강인호의 손바닥에 엄마의 휴대폰 번호와 메시지를 남긴 것을 시작으로 ‘자애학원’을 둘러싸고 있는 무서운 사건은 점점 그 정체를 드러냈다.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폭력과 성폭력과 학대가 ‘자애학원’ 안에서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교장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 것인지, 가해자들을 신고해도 경찰들은 수사를 하지 않았고 교육청에서도 나몰라라다. 무진인권운동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 선배의 도움으로 아이들의 증언을 녹화하고 최후의 방법으로 매스컴을 통해 내보내면서 그제야 겨우 무진시는 뒤집혔다. 이제 가해자들은 죄에 합당한-죄에 합당한 처벌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처벌을 받고 피해 학생들은 조금이나마 그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보지만 그것도 잠시. 재판은 피해자들을 점점 더 궁지로 몰아갔고 말도 안 되는 과정 속에 가해자들은 터무니없는 판결을 받게 된다. 강인호 역시 공격을 받고 다시 소시민의 틈으로 숨어버린다. 사건은 흐지부지 그렇게 다시 발자취를 감추었다.


거대한 악. 그리고 그것에 맞서는 약한 선. 보기 안쓰럽고 딱할 정도로 현실은 가차 없었고 가혹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 속은 분하고 억울하다는 감정으로 가득했다. 내 일이 아님에도 열 받고 그저 지켜봐야만 한다는 사실에 가슴 아팠다. 이건 그냥 픽션이란다, 하고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싶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 생각하기에는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들었다. 화도 났지만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만약 내가 강인호였다면, 강인호의 대학 선배였다면 주변에서 하나둘씩 지쳐 쓰러져가는 와중에 끝까지 악에 맞설 수 있었을까. 내 신변을 위협하는 그 속에서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상상조차도 하기 싫었고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도 세상에는 도가니 속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묵인되고 은폐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몸서리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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