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미
티에리 종케 지음, 조동섭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회색 표지에서부터 아주 음산한 기운이 풍겨져 나왔다. 빨간 글씨의 독거미는 그 분위기를 더욱 으스스하게 만들었다. 티에리 종케라는 저자의 이름도 생소했고, 책 자체도 그리 두껍지 않아서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 <독거미>가 품고 있는 내용은 처음 가벼웠던 마음과는 달리 아주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이 책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가 사는 피부 The Skin I Live In>이라는 영화의 원작소설이다. 책을 다 읽을 때쯤 이 이야기가 얼마나 영화화되기에 좋은 작품인지 알 수 있었다.


<독거미>에는 크게 보면 세 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른 폰트로 쓰여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었는데도 뭔가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로 다른 이야기 같으면서도 묘하게 하나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얼기설기 엉켜있는 거미줄 위에 놓여있던 각각의 이야기가 점점 한 가운데로 모여드는 느낌이었다.


성형외과 의사 리샤르와 아름다운 여인 이브의 이야기가 먼저 펼쳐진다. 둘은 확실히 부부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이임에는 분명했다. 그런데도 분명 그 둘 사이에는 상상할 수 없는 증오가 존재하고 있었고, 서로의 고통을 즐기면서도 또 참을 수 없어한다. 굉장한 애증의 관계인 것처럼 보였다. 둘 사이에는 어떤 상하관계가 있어 보였고 밤이 되면 이브는 감금되어 지내고 리샤르의 지시 아래 매춘을 하는 수치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은행 강도 알렉스가 도망 다니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뱅상 모로와 미갈이 등장한다. 뱅상 모로는 어느 날 납치당했고 캄캄한 공간에 갇혀 4년을 지내야 했다. 처음에는 어떤 착오로 다른 사람 대신 자신이 납치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납치 대상이 자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짐승 이하의 대우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간다. 납치범 미갈은 아주 조금씩 뱅상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기 시작했고, 뱅상은 그런 대우 하나하나에 감동받으며 미갈에게 길들어 가면서 심지어 그를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미갈은 뱅상에게 실험을 하나 하고 있었고 그 실험으로 인해 뱅상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야기를 읽어나갈수록 정말 잔인하고 처절한 복수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이브가 누구였는지, 왜 뱅상 모로가 납치되었는지, 알렉스는 그들의 이야기에 어떻게 끼어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진상을 하나하나 파악하게 되었고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납치되고 갇혀있다는 것에서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전개와 분위기가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실제로 무엇이 진짜 복수인지, 복수를 위해 했던 일들이 지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와 그들의 감정 흐름이 묘하면서도 건조하고 그래서 더욱 잔인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통쾌하고 가슴 시원한 복수극을 바랐다면 그 욕구는 충족시켜주지 못하겠지만 한여름의 더위를 한 번에 물리치기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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