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트 피크닉
김민서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들어,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것이 여행벽이 도진 것 같다. 하늘만 봐도 짐을 싸 어디로든 떠나고 싶고, 비행기만 봐도 몸을 싣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그러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에 비행기가 날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표지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에어포트 피크닉>. 공항으로 소풍을 간다는 말인가? 공항에서 소풍을 떠난다는 말인가? 아무튼 읽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바로 밑 띠지에는 <나의 블랙 미니드레스>의 저자라는 짤막한 한 줄이 쓰여 있었고,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더욱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2010년 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이 있었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화산재로 인해 전 세계 비행기는 하늘을 날 수 없었고, 공항에는 비상이 걸렸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정을 맞추지 못했고, 저마다의 공항에 발이 묶인 채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인천공항에서의 그 며칠간의 이야기가 <에어포트 피크닉>에 새로이 그려져 있었다.


공항이라는 곳에는 저마다 각각의 이유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가 흩어진다. 여행을 떠나거나 여행에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누군가를 마중 나가는 사람도 있고, 배웅을 하러 가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사람도 있고, 또 그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방문한 나라에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다지 즐거운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이 책에서도 다양한 이유로 인천공항을 찾은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영국으로 입양되어 누구 못지않은 사랑을 받고 자란, 그래서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호기심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제임스,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한국에 초청되었다가 돌아가려는 길에 발이 묶인 해리, 아이를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 그리고 그 죄책감에 아이 또래 청년들만 보면 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엘리자베스, 화제의 영화를 만들어 손꼽히는 영화감독이 되었지만, 최근 영화의 부진으로 빚더미에 앉아버린 기욤 감독, 그리고 그와 재혼한 아내 헤더와 사춘기를 겪고 있는 딸 줄리엣, 언젠가 모델로 성공할 그날만을 꿈꾸며 악착같이 살고 있는 크리스티나, 그리고 잃어버린 쌍둥이 때문에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직원 호주.


갑작스럽게 인천공항에 체류해야 했던 그들은 처음에는 당황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며칠을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짜증도 났을 것이고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곧 각각 다른 나라에서 온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공간을 누군가로부터 침범당하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 애초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벽을 두껍고 높게 쌓았던 사람들도 조금씩 그 벽을 허물고 상대방이 내민 손을 잡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조금씩 변해갔다. 아마도 그들이 하나같이 가슴 깊은 곳에 상처를 안고 있었고,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조금씩 그 상처를 인정하고 치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목숨을 바친 전쟁에서 훈장까지 받았지만 배관공으로 전락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해리도,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자신인지 언니인지 헷갈릴 정도로 혼란에 빠졌던 호주도, 사랑에 배신당하고 이혼한 부모를 보면서 대체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줄리엣도, 모두가 결국은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갔다.


등장인물들 중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제임스였다. 겉모습만으로는 평범하고 쿨한 청년 같고 실제로 내색도 잘 하지 않았지만, 입양된 자신의 진짜 모국이 어디인지, 자기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겪어야 했고 고민해야 했던 제임스는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이야기 덕분에 조금씩 자신의 고민을 내비쳤고 함께 나누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고 걱정도 되었다. 후에 직원 호주와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고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을 때는 그래서 가슴속으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둘은 너무나 서툴렀고,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며 그들 대신 그들의 첫 데이트를 아낌없이 지원해주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신경써주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서로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아니었던 사람들이지만, 잠깐의 위기를 함께 겪고 생활했다는 점에서 유대감을 느낀 것인지 서로가 참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비행기가 다시 이륙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쉬운 마음까지 생겼다. 그렇지만 결국은 그들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박수를 치며 그들을 떠나보냈다. 다만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고,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갖지 못했던 크리스티나에 대해서는 좀 아쉬움이 남는다. 크리스티나만 빼고,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닌 자기 자신 속으로의 여행을 안전하게 끝마친 것 같았다. 나도 나만의 에어포트 피크닉을 떠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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