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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예보
차인표 지음 / 해냄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차인표의 <잘가요 언덕>을 읽은 지 벌써 한참이 지났나보다. 차인표의 두 번째 장편소설 <오늘 예보>를 만났다. 표지에 그려진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보면서 전작과는 완전 달리 블랙코미디가 펼쳐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책을 읽기 전부터 작가 차인표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다 덮었을 때는 그 생각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다.

DJ 데블의 하루예보 생방송으로 이야기는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DJ 데블, 좀 이상하다. 그가 방송하는 하루예보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희망, 기쁨, 삶, 생명 같은 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의 이름에 걸맞게 굉장히 죽음과 가깝고, 어둡고, 듣는 이를 낙담하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DJ 데블이 오늘 예보한 사람은 세 명으로, ‘하루가 무지하게 꼬여버린’ 나고단, 박대수, 이보출이었다. 그들의 하루가 그렇게 이 책에 펼쳐져 있었다.
너무 키가 작아 언제나 1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커서는 작은 키를 특징삼아 웨이터로 일해도 보았지만, 그러나 결국엔 노숙자가 되었다. 용산의 무료 급식소에서 자원봉사자와 노숙자로 대학시절 첫사랑을 만나야 했던 나고단의 이야기가 첫 번째로 등장했다. 이 세상 떠난다 해도 아무도 슬퍼해주지 않을 그런 존재감 없고 허무한 삶을 살았던 나고단은, 심지어 죽으려는 것조차 아무에게서도 환영도 허락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일당 4만원을 벌기 위해 엄동설한에도 극심한 무더위에도 새벽같이 촬영현장에서 대기해야 하는 엑스트라 이보출의 이야기가 있었다. 누나네 집에 맡겨 놓은 초등학생 아들을 데려올 생각에 몸도 자존심도 버리고 매일같이 고군분투를 한다. 마지막으로 골수이식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딸 봉봉이 곁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떼인 돈을 받으러 다니는 것이 전부인 전직 조폭 김대수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셋의 이야기는 각각 따로 전개되었지만, 어떻게 서로 인연을 맺고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도 함께 그려져 있었다.
작가는 1988년 IMF 때 수많은 가장들이 꿈을 잃고 희망을 잃고, 한강변에서 방황하던 모습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들을 그냥 지나쳤던 것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해, 글로써 안아주고픈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적고 있었다. 그 시기를 직접 겪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그런 마음을 잘 전달받을 수 있었다. <오늘 예보>에 등장한 세 사람은 분명 힘든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었지만 그들을 통해 전달받은 메시지는, 삶이 바로 기적이라는 것이었다. 잠깐 쉴 수는 있어도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돼는 기적이다. 유쾌하고 재미있고 또 감동적이었다. 작가가 처음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함께 있었다던 다른 네 명의 예보도 그의 손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