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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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작가 조정래의 <황토>를 만났다. 37년에 만에 장편소설로 재탄생했다는 작품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었고 또 그럴 수도 없었다.


점례라는 여인에게는 세 아이들이 있다. 남편은 없다. 그리고 삼남매는 각각 아버지가 다르다. 자칫 오해받고 손가락질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내력이지만 사정을 알고 나면 그렇지가 않다. 이야기는 막내 아들 동익이 조난 사고를 당했다가 구출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동익은 큰 형인 태순에게 ‘살인자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멸시를 당하고, 그것을 지켜보면서 어머니 점례가 지난 삶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피는 못 속여요. 인디안을 개 잡듯 한 그 살인자들의 피가 동해서 그 자식이 그따위예요.”라니. 도대체 서로 사이가 얼마나 안 좋은 형제이기에 그런 심한 말을 하고 듣는 건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얼른 그 사연을 읽어봐야겠다 싶었는데, 책을 읽어나갈수록 태순의 행동은 점점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태순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었다. 태순이란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내 증오를 샀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심청이가 되어 일본인 순사 야마다에게 몸을 바쳐야했다. 밤이면 온갖 변태 행각을 참고 해내야 했다. 마을 친구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야 했고 태순이가 태어났다. 해방과 동시에 야마다는 혼자서 자기네 나라로 도망가 버리고 열아홉 점례는 그렇게 아기와 함께 버려졌다. 이모의 중매로 아들까지 떼어놓으며 박항구라는 성실한 남자를 만났다. 두 딸을 낳고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행복을 찾나 싶었는데 박항구는 인민군이 되어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점례는 두 딸과 또 그렇게 버려졌다. 공산당 남편을 두었다는 이유로 잡혀간 점례는 딸을 치료해주고 선의를 가장해 접근한 미군 프랜더스 대령과 함께 하게 된다. 미군빽이 곧 하느님의 빽이었던 시절, 사람들은 심지어 점례를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집에 올 때면 늘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씩 가져오며 말은 안 통해도 친절하게 대해준 그에게 점례 역시 마음을 열었지만 미군철수와 함께 그도 가버리고 점례는 또 다시 버려졌다. 세상에 이렇게 험하고 고달프고 굴곡 있는 인생을 산 사람이 또 있을까 싶지만, 그 시대를 생각해본다면 점례 같은 여인들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버려진 점례는 흩어져있던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살림을 꾸려나갔다. 일본 순사의 아들, 남북 이데올로기 속에서 낳게 된 딸, 미군의 아들까지. 그녀의 남자들이 떠나고 난 후 그녀는 오롯이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고, 기댈 곳 하나 없이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했다. 집안 경제는 호전되어 갔지만, 태순은 동익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네가 뭔데 동익에게 그러느냐고 대신 소리치고 싸워주고 싶었다. 한없이 동익이 안쓰러웠다. 형으로부터 쫓기고 내몰린 자신의 삶의 이유를 산에서 찾으려고 하는 그를 보며 가슴이 또 한 번 아팠다.


그 누구도 감히 점례를 비난할 수도, 뭐라 할 수도 없다. 점례를 통해 작가는 우리의 역사를,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가슴 아프게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여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볼 수 있었다. 그때의 아픔이 지금 이 순간까지 전해져오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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