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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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인생을 끌어안고 사는 여자, 윤영의 이야기를 만났다. 남편은 매년 공무원시험에 낙방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책만 잡고 있다. 그것이 포기를 하지 않아서인지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책 보는 것뿐이라서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윤영과 남편 사이에는 아직 핏덩이인 아들이 있다. 이들이 아들의 분유 값을 마련하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윤영이 직접 나서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렇게 윤영은 젖이 채 마르기도 전에 물비린내 나는 강가에 위치한 닭백숙집의 종업원이 되었다. 한적한 곳인데 희한하게도 손님들이 많다.


한창 일에 미쳐있을 즈음 제일 똑똑했던, 그러나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둠의 세계로 일찍이 가버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장 돈이 필요하고 없으면 죽는단다. 겨우겨우 가족 부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윤영에게 동생이 그렇게 매달린다. 그때 사장이 윤영을 불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윤영에게는 월급보다도 많은, 짭짤한 부수입이 생겼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숫자가 적힌 수첩이 주어졌다. 매번 도장을 찍어야 하리라.


별채에서는 비밀스러운, 그러나 공공연한 일들이 벌어진다. 닭백숙 집의 은밀한 손님들 중에는 교사도 있었고 경찰도 있었다. 가정이 있고 없고를 떠나 닭백숙 집에서 여자들의 몸을 사고 탐하는 인간들, 돈을 주고받는 육체적 관계를 모른 척 눈감아 주고 대가를 받는 부패한 인간들, 이 모든 거래를 주도하는 사장이라는 인간, 그리고 그 관계 속에 들어가 당연하다는 듯 몸을 내어 주고 돈을 받는 여자들이 있었다. 이렇게 닭백숙 집 안에는 하나의 세계가, 여자의 몸과 돈이 교환이 되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윤영은 몸도 마음도 그렇게 지쳐갔다. 남자 앞에서 다리를 벌리는 일이 처음에만 수치스럽고 굴욕스러웠을 뿐, 이제는 뻔뻔하게 치마를 내릴 수 있다고, 오히려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윤영은 생각했다. 그렇게 일을 하고 몸을 팔고 나서 윤영이 집에 돌아가면 남편이 조용히 밥을 차려준다. 그 모습이 윤영은 답답하고 지긋지긋하고 보기 싫다. 아들 핑계를 대면서 실은 책장을 넘기지도 않고 공부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아 울화가 치민다. 윤영은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거기에는 남편도 남편이지만 잊을 만하면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는 동생들과 엄마도 한 몫씩을 했다.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꼴 보기 싫은지. 윤영을 둘러싼 세계는 왜 그 모양인지 읽으면서도 참 갑갑했다.


윤영은 점점 상황에 적응했고 변해갔다. 적극적으로 돈을 줄 수 있는 남자를 찾기도 했다. 그렇게 수치심이란 걸 무시하고 괴물처럼 변해가는 윤영의 모습이 너무나 담담하고 건조하게 그려져 있어 더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살아야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윤영에게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말고 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윤영의 눈앞에는 어떤 희망의 아주 작은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현실에서 도망치지도 않고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받아들여야 하는 윤영을 불쌍히 생각해야 할지 그런 동정조차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차마 그녀를 응원할 수도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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