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내 주위의 일상이 조작된 것 같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이 책은 작가가 자발적으로 쓴 최초의 전작소설이며, 두 달 만에 완성하였고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집필을 한 작품이다. 그는 여전히 만년필로 직접 글을 쓴다고 한다. 후유증으로 손톱이 빠지는 고통까지 감내해가며 작가의 손에서 이 책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탄생했다. 그리고 나는 한 명의 독자로서 이 책을 읽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K가 자명종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조금씩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린다. 토요일 아침이라 알람을 맞춰 놓았을 리가 없는데 자명종 소리가 울렸다. 언제나 잠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었던 그가 깨어났을 때,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수를 하고 스킨을 바르려고 보니 평생을 사용해오던,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사용했던 스킨의 브랜드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집, 아내, 딸 모두 낯익지만 진짜가 아닌 것만 같다. 낯설기만 하다. 그렇게 K는 주위의 혼돈상태를 느낀다. 처음엔 K가 너무 지나치게 꼼꼼해서 이제는 그것이 과대망상으로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현실이 조작되었다는 K의 생각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잃어버린 휴대폰이 있었던 곳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영화관이었고, 사진 속에서 본 친구의 아내는 분명 자신의 아내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장인은 어느새 매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도무지 혼란스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K에게 벌어진 일들은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아니 그 이상으로 끔찍한 상황이었다.


분명 평소에 마주치는 것들, 사람들임에도 낯익으면서 낯설게 느껴졌다. K를 둘러싼 세상은 K만 빼고 누군가의 의도 하에 바꿔치기 당해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 모두 고용되어 연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고, K는 거기에 장단을 맞춰 연기를 하듯 행동하기도 하고 또 그것에 대항하듯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그리고 정작 조작된 것은 그들이 아닌 K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랐을 때, 나는 소름이 돋았다.


전체의 이야기는 토요일, 금요일 밤에 대한 잠깐의 회상, 일요일, 그리고 다음날인 월요일까지, 단 며칠간을 그리고 있다. 각 아침, K는 똑같은 자명종 소리에 잠에서 깨고 똑같은 혼돈을 체험한다. 그리고 그 사흘 간 K는 ‘진짜 자신’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자신과는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자신, K를 만나게도 된다. 그리고 진짜 낯익은 아내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K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물 흐르듯이 흐르고 자연스럽게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줄거리도 단순하다면 단순하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한데 그게 뭔지 명확하게 찾아내고 단정 짓기가 힘들었다.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듯했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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