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친구를 기다리다가 서점 신간코너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표지를 보는 순간 예전에 읽었던 <빅 픽처>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 있어 눈에 띄었다. <빅 픽처>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다른 책이었다. <빅 픽처>와 꽤나 비슷한 느낌을 주는 표지였다. 약속시간이 가까워져 책을 훑어보지도 않은 채 얼른 책값을 계산하고 나왔다. 집에 돌아와 드디어 책을 펼쳐보았다. 두꺼운 책이었지만 잡은 순간부터 읽기 시작해서 중간에 놓지를 못하고 계속 읽었다.


미국 신문 <보스턴 포스트>지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샐리 굿차일드는 카이로에 특파원으로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영국 신문 <크로니클>지의 기자 토니 홉스를 만나게 되었다. 둘은 자유를 갈망하는 성격 탓에 사무실에서의 일을 버리고 직접 현장을 뛰어 다니며 기사를 쓰는 타입이었고 그런 점에서 둘은 묘하게 어울렸다. 점점 데이트 횟수가 잦아졌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때쯤 샐리는 임신을 하게 되고 둘은 토니의 직장이 있는 런던으로 돌아가 정착 생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각자 너무 자유롭게 살아왔던 그들에게 함께 살고 정착을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책 제목에서부터 살짝 예상은 했지만 예상 밖이었다. 처음에 꿈꾸던 아름다운 생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샐리에게 남은 것은 임신으로 예민해진 신경과 미칠 듯한 간지럼증, 그리고 불면증 등이었다.


결국 기다리던 아들 잭을 낳기는 했지만 샐리는 이제 산후우울증까지 앓기 시작했다. 산후우울증을 앓으며 변해가는 샐리의 모습은 정말이지 무섭고 당혹스러웠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녀의 감정은 살아있는 폭탄과도 같았다. 샐리는 산후우울증이란 증상 때문에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만 생각했고 냉소적으로 바뀌어갔다. 그 기분 변화가 너무나도 극과 극이라 읽으면서 나까지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후우울증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샐리가 답답하고 내가 토니라도 옆에서 견뎌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결국 샐리가 당분간이나마 병원에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는 데 동의했을 때는 안도의 숨까지 내쉬었다. 산후우울증이란 단어가 내게는 그저 막연하게만 인식되어 있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종종 대중매체를 통해 산후우울증의 심각성을 접하기는 했지만 나랑은 상관없다는 생각에 그리 관심 있게 들여다보지 않았었다. 이렇게 책에서 자세한 묘사와 함께 접해보니 정말 무서운 증상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한편 토니는 샐리의 출산 전에는 회사에만 매달렸고 출산 후에는 소설을 쓴다고 서재에서만 지내며 심지어 한 침대에서 자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토니는 임신한 아내에 대한 태도가 너무 소홀했다. 항상 함께 해주고 위로해주어도 모자랄 판에 늘 회사, 일을 핑계로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 했고 그럴수록 샐리와의 관계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둘이 왜 자꾸 서로 엇나가려고만 하는지 멀리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했다. 서로에게 조금씩만 더 신경써주면 좋으련만. 그들은 온통 불만에 가득 차 서로에게 불씨를 던지고 있는 것만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토니가 샐리의 뒷통수를 제대로 치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형부의 죽음 때문에 샐리가 미국에 잠시 머물러야 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은 텅 비어있었다. 마치 결혼도 출산도 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아기와 토니는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이게 무슨.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내려는 토니를 누르고 자신의 아들을 찾기까지 샐리는 정말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한없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다가도 샐리는 지푸라기라도 잡아가는 심정으로 기적같이 끈질기게 기어올랐다. 이제는 샐리가 완전히 미쳐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샐리는 아들을 되찾기 위해 정신을 차렸다. 한때 서로를 미칠 듯 사랑하던 사이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둘의 관계는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결혼이란 과연 그런 것인가 하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까지 생기는 것 같았다.


책 속에서 작가가 들려주는 미국인과 영국인의 미묘한 언어 차이와 문화 차이가 흥미로웠다.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가 태어나기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자라기는 영국에서 자랐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 차이를 잘 묘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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