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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심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회사에서 인정받는 멋진 커리어우먼. 어린 시절 미래의 나를 그려보다 종종 그런 모습을 꿈꾸곤 했다. 깔끔하고 세련된 정장에 하이힐, 그리고 핸드백. 당당한 걸음으로 출근길에 오르는 나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각자 그런 모습을 상상해봤을 것이다.
이 책 <비하인드>는 광고회사를 배경으로 회사 내에서 펼쳐지는 여러 권력 구도와 치열한 경쟁, 그리고 생존과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꽤 유능한 카피라이터 김준희는 스카우트된 광고회사에서 야근도 가리지 않고 일에 열심이다. 일에, 광고에 열정을 갖고 매일매일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 차장으로 승진하고 CD(Creative Director)가 될 날을 꿈꾸고 있다. 매일매일이 광고를 짜내야 하고 기획해야 하는 전쟁터 같지만 김준희는 그런 일상이 고되면서도 즐겁다. 또 회사 내에는 9년간 짝사랑해 온 최민수 대리도 있다. 고백해서 성공만 한다면 완벽하다. 매일 세련되게 스스로를 꾸미고 그런 점에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일과 사랑에서의 성공을 꿈꾸던 그녀에게 그러나 한차례 폭풍 같은 시련이 닥쳐온다. 본부장이 떠난 자리에 부회장의 딸이 발령받았고, 그녀는 끊임없이 김준희에게 트집을 잡고 걸고넘어진다. 광고 아이디어에서부터 패션에 대한 지적까지. 맞서봤자 코웃음거리만 되고 만다. 능력과 사람 자체가 모두 농락당하는 순간이다. 게다가 짝사랑하는 최민수에게 고백할 타이밍도 놓쳐 버렸다. 이 무슨. 김준희는 그야말로 죽을 맛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벼랑 끝으로 몰린 김준희는 결국,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자신의 수호천사 같은 H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모든 걸 빼앗아 가려는 사라를 향해 복수를 다짐한다.
솔직히 김준희가 사라에게 맞서는 장면은 의외였다. 그런 식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복수를 해가며 사라의 피를 말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은 통쾌하기도 했고, 때론 조금 심하다 싶기도 했다. 그래도 모두 유치한 사라가 자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소하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회사 내에서도 라인이 존재하고, 줄을 어떻게 서느냐에 따라 목숨 줄이 왔다 갔다 한다. 그것 못지않게 ‘백’ 역시 중요해 보인다. ‘백’은 흔히들 말하는 background.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느냐는 그 사람에게 보호막이 되어 줄 수도 칼날이 되어 박힐 수도 있다. 실력 경쟁의 뒤에서는 으레 검은 세력이 작용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역시 사회생활은 능력보다는 눈치와 배경과 라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실제 광고가 어떻게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채택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완성작은 굉장히 기발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는 정말 피 튀기는 살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주인공 김준희가 진짜 사랑을 찾아가는 것 같아 보기 좋았고 그녀의 소원대로 일과 사랑 모두 쟁취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