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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쉬 걸
데이비드 에버쇼프 지음, 최유나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 하리수가 대중매체를 통해 공개되었을 때 나라가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한다. 하리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아직 거부감을 느끼고 그(녀)를 여자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이 있다. 하리수의 예처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성전환 수술을 하고 새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타고난 성별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니. 그렇게까지 발달한 의학기술이 때로는 소름끼치게 무섭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걸 알았다. 정말 충격이었다. 실제로 존재했던 덴마크 화가 에이나르 바이에네르 부부의 이야기. 물론 작가에 의하면 실제로 사실을 이용한 것은 주인공이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점뿐이고 소설 속 나머지는 허구에 가깝다고 하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실제 그의 아내의 이름은 게르다였고, 책 속에서는 그레타로 바뀌어 묘사되었다.
서로 사랑하는, 평범한 부부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서로에게서 행복을 찾고 함께 눈을 뜨고. 여느 부부와 다를 것 없었다. 그런데 좀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에이나르에게서 남다른 점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뭔가 조신하고 부드럽고 부끄러움이 많고, 또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여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두 여자가 함께 사는 이야기인 것처럼. 그리고 어디선가 갑자기 릴리가 등장하면서 나는 혼돈에 빠졌다. 릴리는 에이나르와 한 공간에 나타난 적이 없다. 그래서 릴리가 어떤 한 여성인지 아니면 에이나르가 다중인격인지 그것도 아니면 에이나르가 릴리인 척을 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렇게 얼마간은 혼돈과 지루함 속에서 사투를 벌여가며 책을 읽어나갔다.
한참 책장을 넘기고 드디어 릴리의 정체가 밝혀졌고, 그레타와 에이나르, 그리고 릴리, 그들이 함께 사는 방법을 찾는 나날이 이어졌다. 에이나르가 성전환 수술을 위해 여성병원에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고 그레타의 간호를 받고 릴리라는 여자로 깨어나는 부분에서는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도무지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레타였다면? 내 남편이 여자가 되기를 끊임없이 바라고 있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런데 책 속에서 그레타는 오히려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의도적으로 그레타가 릴리를 불러내는 장면들을 지켜보면서, 과연 그레타가 에이나르를 사랑하는 것인지 릴리를 사랑하는 것인지조차 헷갈렸다.
1930년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자가 된 사람에 대한 신문 기사가 다음해 나왔다. 이 수술 후 에이나르는 릴리 엘베가 되었다. 동성 간의 결혼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부는 결국 헤어졌고 릴리는 자신을 수술해준 의사와, 그레타는 이탈리아인 외교관과 나머지 생을 함께 했다고 한다.
니콜 키드먼과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을 맡아 영화화된다는 소식도 접했는데, 영화도 정말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