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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보통의 연애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책 표지에서 싱그러운 봄이 느껴졌다. 당연히 장편 소설일 줄 알았던 이 책은, 단편 소설집이었다. 백영옥 작가의 첫 단편집이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처음에 실린 ‘아주 보통의 연애’가 가장 재미있었고, 너무 짧게 끝나버린 이야기 때문에 단편 소설이라는 사실이 더없이 아쉽게 느껴졌다. 아주 보통의 연애, 육백만원의 사나이, 청첩장 살인사건, 가족 드라마, 강묘희미용실, 푹, 미라, 고양이 샨티라는 여덟 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제일 처음에 읽었던 <아주 보통의 연애>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영수증 처리 담당 직원 김한아. 그녀는 독특한 연애 중이다. 연애 중이라고 말하는 것에 확신이 서지 않을 만큼. 영수증 관리를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박한아는 직원들 모두의 사생활을 꿰뚫고 있다. 그녀가 짝사랑하는 상대 역시 그녀에게 영수증을 보내온다. 김한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접 고백하지 못하고 그의 영수증을 복사해 다이어리에 붙인다. 그리고 그의 자취를 밟으며 뒤따라간다. 이렇게 정작 상대방도 모르는 일방적인 행위는, 절대 연애라고 볼 수 없는 행위는, 오히려 스토킹이라고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쉽게 느껴지는 행위는, 그러나 박한아를 지켜보고 있으면 연애 중인 모습 같다. 집에서의 김한아 역시 보통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서로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 자신을 자식이라기보다는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쯤으로 여기는 엄마 덕분에 김한아는 ‘조로’했다. 어느 것 하나 보통이지 않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포함한 이 책에 실린 이야기 모두는 어떤 또렷한 결말이 없이 그냥 뚝 끊어져 버린다. 그래서 여운이 아주 지독하게 남는다. 조금 비상식적인 영수증을 통한 짝사랑 이야기,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쫓겨나고 회사도 파산을 맞고 루게릭 병 진단까지 받은 다 가졌던 남자의 육백만원 이야기, 청첩장 고객의 결혼식에 가 가족사진에 찍혀야만 하는 이상한 취미를 가진 여자의 이야기, 사라진 아버지와 도박중독자 삼촌과 다이어트와 성형수술만만을 외쳐대는 동생과 섹스기사거리를 찾아다니는 나의 이야기 등.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무언가가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단편들이 끝난 뒤에는 해설이라는, 부록 같은 것이 책 속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해설은 읽지 않고 책을 덮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온 머릿속을 뒤덮고 있는 것 같았다.
보통의 연애란 뭘까. 그것도 ‘아주’라는 수식을 받는.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난 지금은 ‘보통’이란 말이 참 궁금해진다. 우리가 아주 흔히, 일상적으로, 가볍게, 쉽게 사용하는 ‘보통’이란 단어가 왠지 차갑고 허무하고 슬프게 다가왔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어딘가에 둥둥 떠 땅에 발이 닿지 않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