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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아빠가 살인을 했다. 홀로 남겨진 나에게는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평생을 붙어 다닌다.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설정이다. 예전에 아마 희대의 살인마가 잡혔고 그 살인자의 아들까지 이슈화가 된 적이 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난 ‘어린 아이가 무슨 죄가 있나, 저 애는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라고만 생각했었지, 그 아이가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고통을 받고 살게 될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이 책 <7년의 밤>은 특히 그런 면에서 내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친척 중 누구도 ‘소녀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소녀의 아버지도 죽이고 세령호를 물바다로 만들어버린’ 살인마의 아들 서원을 끝까지 안전하게 맡아주지 않았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서원은 짐짝처럼 수시로 옮겨졌다. 눈치가 보여 밥도 제 때 먹지 못했고, 화장실도 제 때 가지를 못했다. 그리고 결국엔 친척들 그 누구도 연락처 하나 남기지 않고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절벽 아래로 한없이 떨어진다면 아마 그런 기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황은 아찔하고 절망적이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서원이 한없이 불쌍하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런 서원에게 한줄기 빛, 승환 아저씨가 등장했다. 살인사건이 있기 전 2주 동안 함께 살았던 아저씨. 서원은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고 선두권을 유지하지만, 이제 간신히 서원에게 안정이 찾아왔구나 싶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살인자의 아들 사진과 기사가 실린 잡지가 배달돼 짐을 꾸려 떠나게 만들었다. 중학교 입학 후 열두 번 전학을 다닌 끝에 결국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택해야 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왜 이 불쌍한 아이를, 살아보겠다는 아이를, 겨우 지푸라기만 붙잡고 있는 아이를 잠시도 가만 두지 않는 것인가. 대체 누가 이렇게 아저씨와 서원을 세상 밖으로 쫓아내려는 건지 정말 화가 치밀었다.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빨리 누구의 짓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에게 마구 화를 내고 싶었다. 그리고 책장을 넘겨가면서 과거가 하나 둘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세령호에서 있었던 끔찍한 살인사건.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감추어진 진실 역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가면서 사실 혼란스러웠다. 명확하게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부터가 헷갈렸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제대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부모의 아동학대, 파괴되어 가는 부부 간의 신뢰, 사랑하는 부자, 차사고, 그리고 결국 살인까지 참 많은 것들이 하나의 선 위에 흐름을 이루어 이 책 속에 담겨 있었다. 과연 일이 어떻게 돌아가야 옳은 건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떠나 아저씨와 서원의 우정과 사랑이 아름답게 다가왔고 좋았다. 둘이 행복할 수 있어 기뻤다. 이제는 그들의 상처가 조금은 아물었기를 바란다. <7년의 밤>을 한 마디로, 혹은 한 문장으로 ‘이렇다’ 하고 말하기가 내게는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그녀는 괴물 같은 ‘소설 아마존’이다”란 박범신 소설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