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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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로 접어드니 바람에서 벚꽃 냄새가 느껴졌다.

달콤한, 그러나 죽음과 광기에 가득찬 냄새였다.



  제목만으로 인문과학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또 틀렸다. 책 표지를 통해 소설임을 알고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오백여 쪽이 넘는 두꺼운 책을 앞에 두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첫 장을 넘겼다. 1957년 1월이라는 꽤 오랜 옛날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상당히 공손한 문체와는 반대로 ‘피에로의 자살과 시체 증발’이라는 미스터리한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을 때, 방금 다룬 사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어라, 단편소설인가? 분명 장편소설이었을 텐데. 끊임없이 고개를 갸웃하며 계속 읽어나갔다.

  겨우 소비세 12엔 때문에 한 치매 걸린 노인이 상점 여주인을 칼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사건이 마무리될 무렵, 담당형사 중 한 명은 여기에 의구심을 품고 사건을 홀로 재수사하기에 나선다. 그는 이리저리 궁리하고 발품도 팔아가며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목격담을 듣고 예전에 마무리된 사건들도 다시 파헤치며 ‘소비세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 시작한다. 소비세를 제외하고 사건 해결의 빛이라곤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이야기는 끈질긴 형사의 수사 끝에 조금씩 조금씩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는 이야기들은 밤에 혼자 읽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포기하고 책장을 덮어버렸을 만큼 무서웠다.

  그렇게 다섯 가지 사건이 드러났다. 한 날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이 사건들은 관련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희미하게나마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다. 하나씩 퍼즐 조각을 맞추어가면서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건과도 맞물려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흘러갔다. 도저히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예상치 못했던 한국인의 등장, 그리고 국가총동원법이란 명목 하에 실시되었던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조선구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고문들. 일본 소설 속에서 접한 우리의 과거와 역사는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여태영, 태명 형제의 기구했던 삶이 읽기 힘들 만큼 너무나 가슴 아팠다. 당시 조선인들의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비참했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

  요즘 일본의 쓰나미와 지진, 원전 문제로 많이 떠들썩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구조대도 파견하고 성금도 모으고 있다. 이런 도움 문제와 관련해서도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감한 많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있는 시기에 이 책을 접하게 되어 뭔가 느껴지는 것들이 더욱 많았다. 우리의 고통스러운 과거와 무자비했던 일본인들의 만행에 대해 이 책의 작가, 시마다 소지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사실 좀 위로가 되는 듯 다가왔다. 더구나 이 책이 출판된 시기를 생각해본다면 참 용감한 생각이었다고도 느껴진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미스터리가 풀렸으니 시원하다, 라는 생각보다는 씁쓸하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형의 기발한 발상은, 정말 진심으로 하늘을 움직였고, 아마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의 마음 역시 움직였을 것이다.

 

 

 


아무리 나쁜 패를 뽑아도 내 신념대로 갈 수밖에 없어.

당신에게 알아달라고는 안 해.

그러나 그냥 놔둬.

내 바람은 단 하나,

내 보잘 것 없는 인생에서 만나는 일에 대해 백은 백이고 흑은 흑이라고 말하며 죽어가고 싶어.

다만 그뿐이다. 방해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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