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티나 데이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악인>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서점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기 때문에,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을 꾹꾹 눌러도 보았지만, 나도 모르게 더 큰 기대를 하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기대 이상의 재미와 흥미진진함,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아사마 형사가 사체를 발견한 상황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시점 일본에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모발이나 체액만 가지고 그것의 DNA 검사로부터 용의자의 얼굴을 그려낼 수 있고, 그의 신체적 특징이나 병력에 대한 자료까지도 수집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범인을 잡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점점 국민들의 DNA 정보가 수집되었고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데이터가 잡아내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 NF13 사건으로 인해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진진함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향하는 바가 극명하게 달라 갈등을 겪는 아사마 형사와 핵심연구원 가구라가 중심이 되어 사건은 전개된다. 관련 인물들의 죽음, 그 죽음 속에 가려진 거대한 배후 세력. 그것은 아사마도 가구라도 단독으로 감히 맞설 수 없는 것이었다.


“국가가 개인의 DNA 정보를 관리한다는 문제를 국민이 용서할 리가 없어.”

  그러자 가구라는 질렸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 죽여 웃었다.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고요? 이보세요, 아사마 반장님. 국민이 뭘 어쩔 수 있다는 겁니까? 데모를 하건 연설을 하건 정치가들은 자기들이 통과시키고 싶은 법안을 척척 통과시키는데요.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해오지 않았습니까? 국민의 반대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국민들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법안을 통과시키다니 용서할 수 없다.’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초기뿐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상황에 익숙해지지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최종적으로는 DNA를 관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걸요.”

세상은 그런 거야. 총리의 아들이 어는 날 갑자기 강간범으로 체포되면 국가가 혼란스러워지지 않겠어?”



  이야기 흐름도 아주 빠르고 또 그만큼이나 술술 읽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언제나 그런 것 같다.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궁금해서 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만든다. 아주 사소한 것도 이유 없이 그냥 등장하는 경우가 없었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독자 역시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하고 끌어안은 채 끝까지 함께 가게 된다. 신선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 그렇지만 이제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아니 어쩌면 일어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를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우리는 편리한 삶을 영위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평등사회라는 것은 어쩌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빌리 밀리건>이란 책을 읽고 다중인격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이해가 되는 한편, 그만큼 어려워지던 다중인격에 대해서 여기에서도 또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성적인 가구라 속에 살고 있는 감성적인 류를 함께 지켜 보면서, 단순한 내 흥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립되던 두 인격이 점점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는 점에서 뭔지 모를 뭉클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추리소설이지만 감동 또한 안겨주는 그런 이야기다, 플래티나 데이터.


“유전자는 인생을 결정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자네의 지론이지?”

 

“인생이라는 프로그램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고 때로는 거기에 수정을 가하기도 합니다만, 어떤 정보를 인생에 활용하고 어떤 정보를 무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본인에게 주어진 초기 프로그램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제 견해지요.”

 

“그것이 유전자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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