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신의 바람 아래서 - 프랑스 추리소설의 여왕 프레드 바르가스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뿔(웅진)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꽤 오래 전에 ‘프레드 바르가스’의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를 읽고 작가에 흠뻑 취해 지내던 때가 있었다. 인상 깊게 읽었다거나 감동적이었다, 라는 말로는 그 책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고 그의 작품들을 사 모으는 것이 어느새 버릇처럼 되어버렸다.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 역시 내게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고, <해신의 바람 아래서>도 그 당시 구입하고는 표지를 펼쳐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수식어로도 부족한 그런 책을 읽기 전에 드는 이 기대감과 두려움이 섞인 감정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이 책, <해신의 바람 아래서>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주 프랑스의 느낌을 풍기는 추리소설이다. 프레드 바르가스만의 추리소설을 프랑스에서는 ‘Roman policier(추리소설)’을 줄인 ‘롱폴(ronpol)’이라는 명칭을 두고 있는데, 이렇게 자기 자신만의 어떤 이름이 주어져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프랑스 추리소설계의 여왕답게 그녀의 작품들은 저마다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것 같다.

 

<해신의 바람 아래서>는 ‘세발작살’이라는 흉기로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 살인마를 뒤쫓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으레 ‘살인사건’이 주소재로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독자에게 단 한 번도 책을 읽으면서 살인사건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살인 사건은 저기 구석으로 몰려 힘을 잃는다. 그리고 모든 포커스는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로 쏠리게끔 만든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발작살에 연쇄살인까지 더해진 설정은 정말 무섭기 짝이 없는 소재임이 분명한데도,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내가 책을 읽는 내내 경쾌한 마음, 혹은 그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녀가 책 속에 그려놓은 인물들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매력이 넘친다. 저마다의 캐릭터가 강하고 독특하고 유쾌하고 발랄하며 천재적이다. 살인사건이라는 무거움과는 반대되는 인물들의 그런 성격이 책에 빠져드는 재미를 더해주는 요인인 것 같다.

 

경찰 서장에서 순식간에 살인 용의자가 되어 누명을 벗으려 발버둥치는 아담스베르그 형사부터 독특한 성격을 제대로 보여준다. 먼저 입에 착착 달라붙는 그의 이름부터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이성보다는 감성과 직관으로 범인을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그는, 언제나 길을 걸으며 사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뜬구름 잡는 스타일. 그에게는 동생에게 씌어 있는 살인범이라는 누명이 또다른 작살이 되어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그가 오래전부터 진짜 살인범으로 지목한 용의자는 교묘하게 그물을 뚫고 유유히 사라지곤 했다. 그러다 누명을 벗길 수 있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며 아담스베르그 형사는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그의 근성을 제대로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아담스베르그를 수많은 프랑스인들로부터 사랑받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담스베르그 외에도 형사 당글라르, 지혜와 기지로 똘똘 뭉친 르탕쿠르, 따뜻한 품을 열어주는 클레망틴과 해커 할머니 조제트 등이 등장해 사건은 더욱 실감나게,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특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건들 틈에서 발버둥 치느라 지친 아담스베르그를, 사방이 벽으로 막힌 것 같이 답답하고 자신의 확신을 광기라 하는 주위의 시선들 때문에 힘든 그를, 따듯하게 품어주는 할머니 클레망틴과 조제트 덕분에 이야기 밖에서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하는 나도 그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또 벌써 그의 다음 이야기에 한껏 기대감이 높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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