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라무슈
프로메테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갑자기 한가로워진 오후, 방 정리나 해볼까 하다가 책장으로 눈을 돌렸다. 오랫동안 읽지 않은 상태 그대로 책장 속에 잠재워두었던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새하얀 표지 안에서 검은 글씨를 반짝이는 <스카라무슈>. 아마도 두꺼운 두께 탓에 언제 마음먹고 읽어야지, 하고 꽂아두었던 모양인 것 같다. 책의 띠지에는 “노스탤지어가 샘솟는 최고의 활극소설”이란 문구가 쓰여 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돈키호테가 떠오르면서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 빨리 읽어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활극 소설이라! ‘활극’이라는 것은, ‘싸움, 도망, 모험 따위를 주로 하여 연출한 영화나 연극, 또는 격렬한 사건이나 장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카라무슈’는 이탈리아어 ‘스카라무차(실랑이질)’가 프랑스어화된 말로, 가면을 쓰고 검은색 의상을 걸치고, 항상 기타를 들고 나와 비굴하면서도 허풍을 떠는 익살꾼 배역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스카라무슈>는 18세기의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앙드레 루이 모로는 변호사이다. 가브리악의 영주 켕텡 드 케르까디유를 대부로 섬기면서 정작 부모의 존재를 모르는 그 자신은 귀족에도 그 아래 계급에도 속하면서 속하지 않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자신만의 철학과 생각에 잠겨 있기를 즐기는 사람이고, 또 부조리함은 절대로 눈을 뜨고 보지 못하는 성격의 인물이다.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친구, 필립 드 빌모렝의 억울하고도 어이없는 죽음으로 인해 앙드레 루이 모로의 운명은 친구의 사상을 좇아 극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렇게 빌모렝의 죽음을 애도하며 친구의 뜻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한 순간, 빌모렝의 뜻을 자신의 목소리로 내뱉기 위해 수많은 관중 앞에서 연설을 한 그 순간, 많은 추종자들을 만듦과 동시에 그는 순식간에 변호사에서 국가로부터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도망자 신세로 방황하던 앙드레 루이 모로는 우연히 거의 망해가는 극단과 마주치게 되고, 그만의 말솜씨를 이용해 극단에 들어가 ‘스카라무슈’로서 뛰어난 연기력과 청중을 사로잡는 능력, 그리고 극단 운영 능력으로 인정받으며 결국은 성공한 극단장의 위치에까지 서게 된다. 그러나 이를 고깝게 여긴 전 극단장의 배신으로 인해 그는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되고 역시 또 극적으로 펜싱 센터에 들어가 펜싱 마스터에까지 이른다. 이렇게 앙드레 루이 모로는 무엇이든지 그만의 능력과 재능, 그리고 노력으로 항상 맡은 곳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500쪽이 넘어가는 장대한 이야기 속에 그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과 사회 분위기는 아주 잘 녹아있었다. 다소 무거운 사회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이야기는 절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두께에 비해 정말 막힘없이 술술 쉽고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앙드레 루이 모로가 펜싱 기술을 배우고 마스터에까지 이르는 과정에서는 생생한 재미를 한껏 느끼기도 했다. ‘악당의 무리’를 무찌를 때는 심지어 통쾌함마저 느끼며 그를 응원하고 그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스로 스카라무슈가 되어 친구의 뜻을 받아 세상과 싸우고 자신의 운명과 끊임없이 충돌해야만 했던 그가 한없이 가여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은 책이 끝나갈 때까지 그의 발목을 꽉 붙들고 쉽게 놓아주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스카라무슈는 언제나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고 이겨내야만 했다. 최후의 승자가 되어 진정한 미소를 띤 그를 본 순간에 이르러서야 나 역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기쁜 마음으로 넘길 수 있었다.

 

어느 멋진 협객의 사랑과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유쾌한 영웅을 만나보고 싶다면, 긴 이야기 앞에 겁먹지 말고, <스카라무슈>를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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