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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어린 거짓말
케르스틴 기어 지음, 전은경 옮김 / 퍼플북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경쾌하고 비교적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이유로 나는 칙릿 소설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다. 그런데 아직까지 독일 칙릿은 접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것도 그거지만, 일단 이 책의 표지가 꽤 충격을 안겨 주었다. “레알이야, 소름 돋았어! 읽으면 빵 터지는 완전 공감 소설”이라니. 사실 좀 그랬다. 솔직히 책을 읽기 전에도,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 글귀는 이 책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내게는 개인적으로, 괜히 인터넷 세상 밖에서 마주치는 이런 부분에서는 거부감이 인다. 어쩌면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고 책을 집어 들었던 나와 같은 반응을 이끌고자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칙릿 시장을 석권했다’는 글귀가 보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책을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요한나. 인기가 조금씩 떨어지려는 기미가 보이는 잡지사의 기자로 가장 막내면서도 가장 적은 월급을 받고 있지는 않은, 나름 참신한 소재를 잘 찾아내는 인재다. 맡은 일은 성실히 잘 해내고, 성격도 좋고, 친구들의 고민도 잘 들어주고, 부모님의 기대에도 잘 부응하고, 가족에게도 헌신적인 요한나에게는 질펀함의 도를 넘어서버린 엉덩이를 빼고는 ‘엄친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인다. 새로 온 편집장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프로젝트 기사를 맡게 된 요한나가 일을 진행시켜가면서 친구들과, 또 직장 동기들과, 식구들과 벌이는 나름 좌충우돌 이야기들이 <진심 어린 거짓말>을 이루고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섹스 앤 더 시티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도 잠깐씩 마주칠 수 있었다.
오직 사랑과 인내로 가족을 끌어안고 있는 새아버지, 그런 사랑과 인내에도 아랑곳 않고 거의 모든 일들을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심한 괴짜 친(?) 엄마가 있다. 동생의 중요한 졸업시험을 앞두고 엄마와 아버지의 교육에 관한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가족붕괴의 위기에 봉착한다. 채팅으로 만난 남자친구와의 준비되지 않은 만남이, 그리고 뜬금없는 직장 상사의 고백이 같은 시기에 요한나를 한 번에 덮쳐온다. 바로 그 곳곳에 거짓말이 도사리고 있다. 그 거짓말로부터 하나하나 진실이 드러나면서 모두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안정되어 가는 모습이, 그리고 그 과정이 칙릿답게 그려져 있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이 이야기의 결말은 처음부터 거의 예측이 가능하다. 다만 책 속의 주인공만 까마득히 모를 뿐. 그럼에도 재미있다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것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진심과 또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과 꽝! 하고 부딪쳐야 하는 시점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런 시점에서 겁 한 번 내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때때로 정말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일단은 주춤해버리고 마는데, 그런 고민과 가슴 속에서만 이는 답답한 갈등들을 요한나에게 상담하고 난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직접 요한나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아니 말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을 요한나에게 털어놓은 것 같다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