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피오
마르탱 파주 지음, 한정주 옮김 / 문이당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보지 않은 것을 본 것처럼. 들어본 적 없는 사실을 들어 아는 것처럼. 유명한 예술가의 양 입술 사이에서 언급된 사람이나 작품을 우리는 별 의심 없이 기꺼이 받아들이곤 한다. 그리고 유명한 예술가 등의 관심을 받은 사람이나 작품 역시 순식간에 ‘유명’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피오에게도 역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단 하루아침에.




  스물두 살. 소녀라고는 할 수 없는 고아 소녀 피오. 스물두 살 현재 이야기에 앞서 보여준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아주 강렬한 인상을 준다. 경찰과 범인으로 만나 사랑에 빠진 아빠와 엄마. 그러나 서로 다른 감옥에 가게 된 부모님. 애타게 그리워하는 두 분을 서로 만나게 해주려는 피오의 노력.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과 할머니의 죽음 등. 절대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 ‘불행한’ 소녀 피오는 법학 공부를 위해 향한 파리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든다. 역시 조금은 특이한 삶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조라. 돈을 벌기 위해 벌이는 피오의 기이한 행각들. 그림을 볼 줄도 모르지만 직접 그녀의 그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그림에 조금은 소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피오의 기이한 돈벌이 방법에 걸려들어, 그리고 우연찮게 그녀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고 피오의 그림을 사게 된 한 노인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노인은 바로 앙브로즈 아베르콩브리, 예술 비평계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아베르콩브리가 죽고 나자 그의 후견인이었던 샤를 폴케는 피오를 찾아와 후견인이 되어주겠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되자, 세상 사람들은 피오를 두고 아베르콩브리가 인정한 떠오르는 천재화가라며 칭송하기 시작한다. 바로 직전까지 당장의 생활비를 걱정하던 피오를 두고 말이다.




  자고 일어나 보니 떴다고 말하는 연예인들보다도 피오는 더 무서운 속도로 유명해졌고 그만큼 존경받았다. 아니, 뭘로 존경을 받았다는 거지? 정작 황당한 것은 독자들보다도 당사자인 피오였다. 그러나 그녀는 샤를 폴케에게 모든 것을 내맡겨버린다. 항상 그래왔듯이. 그러나 사람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피오가 견딜 수 있는 적정선이라는 것을 넘어버린 것이다. 보지도 않은 피오의 그림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고 이제 심지어는 그녀가 있지도 않은 곳에서 그녀를 봤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제는 감당조차 하기 힘든 피오.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세느 강을 향한다.




  피오는 ‘행복해야만’ 했다. 모두가 자신을 향해 존경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는데 행복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피오는 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오히려 피오는 과거의 불행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지금보다는 ‘그때의 불행이 자연스럽고 웃음과 뒤섞일 수도’ 있었다. 물질적인 것으로 모든 만족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사기를 예술의 한 분류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걸까. 부조리한 예술.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저자의 블랙 유머, 사회적 풍자와 어울리며 새로운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게 ‘빨간 머리’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빨간 머리 피오>의 원제는 <La libellule de ses huit ans>, ‘여덟 살 때의 잠자리’라고 한다. 어린 시절의 회상 속에서도 비쳤던 폭풍 속 잠자리의 이미지. 거침없이 쏟아지는 빗발 속에서도 힘찬 날갯짓으로 솟아오르던 잠자리의 이미지는 피오의 머릿속에 그대로 강하게 각인되었다. 이 잠자리처럼 피오도 살고 싶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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