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요시다 슈이치의 ‘최고의’ 연애소설이라는 타이틀.

  그의 <악인>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니 다른 책이더라도-<사요나라 사요나라> 역시 흔하고 쉬운 연애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독특하다거나 특별한 소설이 그려질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인 사랑이 그려져 있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너무나 완벽하고 고독한 사랑이라 해피엔딩으로는 끝을 맺지 못하는 사랑은 그래서 더욱 고혹하게 느껴지는 걸까.




  역시 시작은 살인사건이다. 물론 이 살인사건이 중심이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계곡에서 시체로 발견된 소년. 그리고 용의자로 검거된 소년의 엄마. 그리고 그들의 옆집에 살고 있는 ‘부부’. 그리고 이 사건을 맡아 취재하던 기자. 그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벌어진 한 사건으로 인해 한 데 엮이고 만다. 이 책을 읽은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아직 선선한 날씨지만, 요시다 슈이치가 묘사하는 끔찍한 더위 탓에 얼음물 속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사람들의 의식 세계를 요시다 슈이치는 발칵 뒤집어 놓는다. 절대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수치화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증오를 독자로서 과연 공감할 수 있을까. 절대 정상적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과거의 사건은 점점 그들을 잠식해간다. 16년 전 운동부의 집단성폭행 사건. 죗값 아닌 죗값을 치른 이는 그러나 ‘피해자’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혹한 폭력. 모두가 알고 있지만 쉽사리 수면 위로 떠올리지는 않는 잔인한 충격. 과거의 트라우마는 정말로 현재를 지배하는 것일까. 적어도 어떤 영향만큼은 미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피해자의 입에서 나온 짧은 두 문장은 그녀의 아픔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내가 죽어서 당신이 행복해진다면, 난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

   당신이 죽어서 당신의 고통이 사라진다면, 나는 절대 당신을 죽게 놔둘 수 없다.







  한편 가해자는 가해자 ‘나름대로’ 자신의 죄에 얽매여 살고 있었다. 비록 세상은 그를 용서했을지라도 스스로에게까지 용서받기엔 그는 조금은 깨끗했던 걸까. 아무튼 결과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생각이 한 데 좁혀져버리는 괴이한 일이 생겨나버리고 만다. 과연 이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나코가 그의 곁을 떠나며 남기고 간 말, ‘안녕’. 일어를 전혀 모르지만, ‘사요나라’라는 말이 보통은 헤어지는 연인 사이에서 혹은 오래거나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쓰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럼 이제, 가나코는 그를 ‘용서’한 것일까.







  -아드님이 강간 사건 같은 걸 일으킨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글쎄, 실망스럽겠지.

   그런 바보 같은 일로 아들의 인생을 망친다고 생각하면 엄청 실망하겠지. 부모로서는.

  -실망한다.. 그럼 만약 따님이라면?

  -딸? 딸이 강간당한다고?

   그럼 놈을 때려죽여야지.







  아마 누구나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대답을 생각할 것이다. 가해자라면, ‘겨우 실망 정도로’ 죄를 최소화시키려 할 테고, 피해자라면 ‘가해자를 죽이고 싶을 만큼’ 피해를 최대화하려고 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곳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는 우리가 있다. ‘세상 사람들 모두는 피해자이고 싶어 한다.’는 글을 바로 그의 <악인>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요시다 슈이치는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누구를 이해해야 할지 그 자체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가 이끄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가해자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그 순간 그것은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우리가 정말로 이해하려했고 용서하려했던 사람들이 가해자였던가, 피해자였던가. 하얘진 머릿속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벽 깊숙이 등을 돌리고 있는 여자를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꼭 가나코를 다시 찾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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