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채윤 지음 / 러브레터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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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이라는 지긋지긋한 연극 따위는 때려치우고 가출을 결심한 아버지?

  철없는 애들도 아니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가출을 한다고?




  세상에 이보다 더 무책임한 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일기장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버지’라면 당연히 짊어지어야 할 당연한 의무라고만 생각했다. 자기 식구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마땅히 해야만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타의로 어쩔 수 없이 가장이 된 것이 아니니까.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면 적어도 버리고 떠나지는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말이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모든 것을 놓아버릴 거라면 처음부터 ‘아버지’라는 자리에 앉지 말았어야지. 나는 나름대로 책 속의 아버지를 내 기준과 잣대로 평가해가면서 책장을 넘겨나갔다.




  책 속에서 아버지의 딸로 나오는 ‘승희’는 내 또래다. 승희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이 세상에 승희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은 사람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버지 사업의 연이은 실패, 그 실패가 불러오는 아버지의 추락, 그리고 그 부담을 오롯이 떠안게 된 어머니. 그리고 보통은 빠지지 않는 사기와 위기들. 세상의 ‘승희들’이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고 즐겁기만 해도 모자랄 대학생활을 아버지의 가출 때문에 가슴 아파해야하고 술을 마시며 달래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 그러나 승희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리고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그런 승희의 노력은 얼음장처럼 변해버린 엄마의 마음마저도 녹여버린다. 과연 그들이 다시 예전처럼 온전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라는 존재. 내게는 아득하고 무섭기만 한 사람이다. 항상 권위 있는 모습만 보여주시는 아빠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내게 흐트러지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 난 모든 아빠라는 사람들은 그렇게 무섭고 다가가기 어렵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텔레비전에 등장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비관자살의 주인공들이 때로는 ‘아버지들’이라는 사실에 별로 공감을 하지 못한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강해보이는 아버지들이 그렇게 쉽게 인생을 포기할 리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런 나만의 상상 속에서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은 아빠를 향한 나의 마음에 대한 일종의 자기합리화인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아빠에게는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런 식으로 아빠에 대한 미안함을 내 나름대로 지웠던 것 같다. 




  이 책은 김정현의 <아버지> 만큼 슬픈 이야기는 아니다. 그 책을 읽었을 때처럼 눈물이 왈칵 쏟아지지도 않고, 아빠께 잘 못해온 그동안을 몹시도 후회스럽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아버지가 돈을 찍어내는 기계는 아니라는 것을, 강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내색하지는 않지만 소외되기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여느 사람들과 같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없이 알려준다. 승희네 가족을 통해서. 승희가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아버지의 과거를 공감과 아픔으로 좇아가면서, 이 책을 읽는 나도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아빠의 일기장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강철 같기만 한 아빠의 여린 모습을 그 속에서 발견하고서, 나도 아빠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승희의 아버지 원근은 여러 번의 실패와 배신을 경험하면서 점차 물질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간다. 그리고 결국은 가출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 모든 물질로부터 도망쳤다. 그러나 그는 그 고통스러운 가장이라는 연극을 때려치우고 도망친 사람치고는 의외로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옥탑방에 사는 여자. 그녀에게 정을 느끼고 알게 모르게 사랑의 감정을 키워갔던 아버지. 처음엔 도리질을 쳤겠지만, 완강하게 거부하지는 않았다. 과연 아버지의 가출은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걸까? 그래서인지 뭔가 조금은 아쉬운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아쉬움들은 모두 뒤로 하고, 내게 있어 아빠란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책 읽는 동안 아빠라는 사람을 내 머릿속 가득이 채워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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