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네 등을 발로 차주고 싶어. 

  하츠는 아주 담담하게 생각하고 담담하게 말한다. 참 별나기도 하지.




  하츠는 학창시절 한 반에 꼭 한 명씩은 있었을 법한 아이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 모든 것에서 한 발짝씩 물러나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친구. 고등학교 1학년생 하츠. ‘인간관계’라고 하는 것이 가식 빼면 시체라고 생각하는 하츠는 소외되는 것도 원하지 않고, 또 그렇다고 해서 여럿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 그런 아이다. 모든 관계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계를 긍정하지도 않는 그런 아이다. 무리에 속하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하는 것보다는 그냥 진정으로 통하는 친구 한두 명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주의이다. 그런 무리는 그저 열심히 ‘머리 꽁지나 흔드는 잡초 다발’로밖엔 보이지 않았으니까. 혼자도 싫고 그렇다고 무리에 끼이기도 싫은, 아이러니와 혼동으로 가득한 나날들이 바로 하츠의 생활 그 자체였다. 그런 그녀의 눈에 한 소년이 비친다, 니나가와. 전형적인 은둔성 외톨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니나가와는 흠모하는 모델의 모든 것을 모으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아간다. 오직 그것만이 사는 이유고 재미인 것처럼.




  학교라는 작은 공동체가 이 둘, 즉 무리에서 도태된 ‘나머지 인간’에게는 지극히 부담으로만 다가온다. 왠지 그곳에서, 그리고 학교 아이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은 수업과 수업의 사이, 혹은 점심시간에 특히 심해진다. 니나가와마저도 견디기 힘들어할 정도로 말이다. 이 시간이 다가올 때면 하츠는 저절로 어깨가 굽어지고 숨이 막힌다. 어쩌면 그래서 니나가와는 점심시간이면 어디론가 사라지는지도.




  그러나 이 ‘나머지 인간’이 변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은 없지만, 바라는 것은 많은 자신을 발견하고, 그동안 너무 자기 입장에서만 자기를 합리화시키고 이해받기를 바라고만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또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가 ‘진정한 정’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츠가 변하기 시작한 때를 언제라고 딱 잡아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아마 니나가와를 바라보는 순간에서부터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하츠 스스로조차도 니나가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 어떤 종류인지 파악하지 못한다. 이유라면 간단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자신을 만나게 되었으니까. 그를 통해서 하츠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식을 차츰 터득해 나갈 것이다.




  딱 ‘그’ 시절에 ‘그’ 공동체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그렇기에 다른 작가가 아닌 와타야 리사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조금씩 느끼고 공감하기도 하는 감정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하츠는 그 때의 우리보다 좀 더 예민했구나 하고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아주 예리한 눈을 빛내고는 있지만 정작 진실을 보기에는 아직은 조금 어린. 그리고 아직은 여린 그 소녀를 통해서 우리도 조금은 더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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