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그것도 불쑥, 인생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그렇게 들어온 사람은 이전까지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바꾸어버린다. 그리고 그 방향은 좋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의 한나가 바로 미하엘의 인생에 불현듯 찾아온다. 열다섯, 어리고 순수한 나이, 미하엘은 간염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서른여섯 살, 그녀 한나가 다가와 구토를 하고 있던 미하엘을 도와준다. 그렇게 둘은 우연히, 어쩌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자신을 도와준 한나에게 미하엘은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도와준 데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아니었고, 엄마나 아빠를 사랑하는 것과도 다른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감정은 한나를 향한 미하엘의 마음을 맹목적으로 만들어버렸다. 수업도 가고 싶지 않을 만큼, 가족과의 식사 약속을 물리고 싶을 만큼 말이다. 이 책은 <더 리더>를 통해 미하엘의 눈과 마음으로 본 것이 우리에게 전해진다.




  엄마가 될 수도 있을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 차 속에서 미하엘은 그렇게 한나를 사랑하고 한나 역시 애정 어린 마음으로 미하엘을 받아준다. 그리고 그 사랑은 육체적인 관계까지 나아간다. 사랑을 나누기 전, 언제나 한나가 미하엘에게 바라왔던 책 읽어주기는 모든 것을 떠나서 정말 낭만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의 연인들과는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 차 때문도 만나는 방식 때문도 아니었다. 한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미하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뭔가가 위태위태하게 그들 사이에 거리를, 벽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비정상적인 소통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원치 않는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아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두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조마조마해지고 불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한나가 어느 날 불현듯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것으로 현실이 되고 말았다. 미하엘도, 그리고 나도 많이 놀랐다.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남아있는 사람의 삶에 예기치 못한 빈 공간을 만들어버리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남겨진 미하엘은 이유조차 모르는 한나의 사라짐에 원망과 동시에 답답함을 느꼈다. 여기에서는 스물 아니 서른의 나이 차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못한다. 한 여자 한나와 한 남자 미하엘 사이의 관계만이 중심에 우뚝 설 뿐이다.




  그렇게 사라진 한나를 미하엘은 계속해서 잊지 않고 가슴에 품는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 말이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어린 시절의 사랑은 미하엘을 좀 더 빨리 성숙시켜 그의 인간관계에는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을지 몰라도, 다른 사랑을 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미하엘은 자신의 결혼생활을 지키지 못한다. 그때까지도 가슴 속에서 미하엘은 한나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만나고 있었다. 죄책감인지 원망인지 모를, 그리움인지 사랑인지 모를 감정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이제는 그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된다.




  이 책 속에서 우리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만날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갈등의 양상이라든지 철학적인 사유의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전후 독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소통의 부재라는 것이 불러내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으며,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진정으로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속속들이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러나 적나라하지는 않게 잘 조율하여 묘사하는 것 같다. 법대 교수이면서 판사로,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987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여럿의 작품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인상적인 작가를 만나는 것은 독자로서는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만나보게 할 계기를 만들어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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