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태후
신용우 지음 / 산수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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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추의 한을 풉시다.”

  라는 효종의 말로 이 책은 시작하고 있었다. 제 작년에 <서태후>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 속에 담긴 그녀는 대단한 여걸이자,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역사 속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는 아마 그 책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꽤나 인상적으로 기억 속에 남은 탓에 ‘역사 속의 여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서태후였다. 그리고 이 책 <천추태후>는 우리나라에도 중국의 서태후만한 사람이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천추태후>의 저자 신용우는 과거의 역사를 거울삼아 현재 우리민족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뜻에서 이 책을 펴냈다. 2002년에 모습을 드러낸 중국의 동북공정, 자기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는 자기네의 것이라는,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논리이다. 그런 중국의 국가적 계획에 맞서, 우리는 천 년 전 천추태후가 거란과 손을 잡고 송을 물리치려 했듯이 우리도 북한과 힘을 합쳐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천추태후는 고려 경종의 아내였고 목종의 어머니였던 헌애왕후를 일컫는 말이다. 그녀가 말하는 천추의 한이란, 다름 아닌 고구려의 옛 영토를 찾아야 함을 말한다. 천추태후는 그렇게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다해 애를 썼으나, 역사는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꿈은 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는 천추태후가 될 헌애가 태어나기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애의 할머니 신정왕후는 어느 날 비상한 꿈을 꾸고, 헌애의 두려운 미래를 감지하게 된다. 그렇게 태어난 헌애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오빠들과 동생과 함께 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다. 사냥을 좋아하던 아버지 왕욱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대신 자녀양육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왕욱이 오랜만에 사냥 길에 오른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차가운 그의 주검뿐이다. 눈을 감고도 말을 탈 수 있는 사냥터에서 어이없게도 말을 탄 채 낭떠러지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북방 호족 가문에서 위험한 인물로 꼽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던 왕욱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보다는 자식들의 안위를 생각했다. 왕실에서 어느 것이 진정으로 필요한 선택인지를 판단하고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택한 것이다. 칭송받아 마땅한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왕욱의 부성애에 참 가슴이 아프고 쓰렸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 시대의 왕가가 참으로 비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왕욱의 죽음 부분을 읽었을 때, 그의 깊은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고서 혼자서 타살이라고 단정 지었던 게 부끄러웠다.




  훌륭한 아버지의 가르침과 희생 때문에라도 헌애는 바르게 자라날 수밖에 없었다. 역시 헌애는 박학다식도 그렇지만 무예에도 뛰어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책 속에서 묘사된 그 미모도 아주 빼어나 팔방미인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경종의 현명한 비가 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정사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헌애는 아들 송이 목종으로 보위에 오르면서부터 천추태후라는 이름으로 고구려에 없어선 안 될 인물로 자리 잡는다. 유명한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이야기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거란의 성종과도 담판을 짓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의남매를 맺기까지 하는 등 그야말로 그녀의 활약은 대단했다. 남자들의 의리도 이보다 더 대단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은 오직 단 하나의 목적, 바로 고려의 현재와 미래를 이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천추태후는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아야만 했고, 가슴에 상처를 입어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 목종, 김치양,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그리고 자신마저 다 잃고 마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천추태후의 곧은 의지와 바른 의도를 알기 때문에 더욱이 천추태후가 맞이하게 된 비극이 가슴 아프게 생각했을 것이다. 천추태후의 이야기는 왕가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반정 속의 희생자로 치부되어 역사 속에 깊이 묻혀버릴 수도 있었으나, 그녀의 국토를 향한 열망과 기개는 이를 용인하지 않았기에 비로소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은 기다리지 않고 흐른다.

       다만 지난 세월을 그리워하며 현재를 탓하는지,

       아니면 오는 세월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그에 맞게 인생을 설계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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